Project Description

이슈 논단

개성공업지구 개발의
의의와 미래전략

변상욱 소장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도라산출입사무소

들어가며

오징어 게임이 전세계 넷플릭스 드라마 순위 1위를 하고, BTS가 세계적인 록그룹 콜드플레이와 콜라보곡을 발표하였다. 몇 해전, K-Pop과 K-Drama의 인기가 일시적 유행이라는 예측을 뒤엎고, 작년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감독상을 받은데 이어 올해는 윤여정배우가 여우주연상을 받았으며, BTS는 연속해서 빌보드차트 1위를 차지하였다. 코로나의 세계적 유행 속에서 거두고 있는 성과이다. 작년 갑자기 코로나가 퍼지면서 영화같은 비현실적인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이 역설적으로 한국의 위치를 드러나게 하였다. 작년 한국은 주요국가 중 가장 좋은 경제성적을 거두었으며, 수출은 반도체, 조선, 자동차, 철강 산업의 호조로 사상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또한 2차 전지, 제약·의료, 게임, 웹툰, 영상 등 신산업의 도약이 미래의 전망을 더욱 밝게 하고 있다. 2019년 게임산업의 무역수지는 64억 달러를 기록하여, 전체 무역수지 흑자(389억 달러)의 약 16%를 차지하였다. 올해 7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총회는 한국을 역사상 최초로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격상시켰다. 최근 베스트셀러 책 제목처럼 ‘눈떠보니 선진국’이 된 것이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우리나라는 이런 성과를 거두고 있으나, 안타깝게도 남북관계는 코로나유행 이후 전망이 더욱 불투명해진 상태이다.

그러나 남북관계의 개선 없이는 한국경제의 지속적인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한국경제가 선전하고 있지만, 잠재 경제성장률은 점차 떨어지고 있으며, 청년 실업률이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는 등 경제적 어려움은 여전하다. 또한 안보위협은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가로 막는 요인이다. 그러므로 한국경제의 발전을 위해서 남북관계 개선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남북교류는 국내 육상교통을 대륙과 연결해 섬나라와 같은 지리적 약점을 극복하고 인구가 1억 명에 달하는 중국 동북지방과 경제공동체를 만드는 토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남북관계 개선 시 우선 북한철도, 도로 등 인프라 개선 및 북한의 경제특구개발사업 등 건설분야가 중심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경제특구개발은 북한이 2013년 경제개발구법을 제정하고, 25개∼27개의 경제개발구를 지정하는 등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하고 있는 정책이므로 북한경제특구개발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북한에서 유일하게 실현된 공업단지인 개성공업지구의 개발의 성과와 한계를 분석하고 이에 따른 북한개발 방향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남북경제협력과 건설협력사업

남북경제협력은 1988년 노태우 대통령 당시 추진한 ‘북방정책’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가 체결 후 본격화되었다. 남북기본합의서 체결이전에도 이미 56여개 기업이 남북교역에 참여하고 있었으며, 최초의 남북교역은 ㈜대우에서 1989년 제3국을 통하여 도자기를 수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0년대 초 한국의 건설사들은 해외건설을 단순시공에서 부가가치가 높은 개발사업으로 전환을 추진하고 있었으며, 북한지역에 대규모 개발사업계획이 발표되었으므로 남북교류 초기부터 대북사업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1989년 정주영 회장은 평양을 방문하여 금강산개발사업에 합의하였다. 1991년에는 UNDP가 북한, 중국, 러시아 3국의 접경지역인 두만강유역개발사업계획(TRADP, Tumen River Area Development Programme)을 발표하였고, 북한은 나진선봉을 경제자유무역지대로 지정하였다. 나진선봉경제특구는 면적이 621㎢(1993년에 746㎢로 확대)달하고, 특구 내에 공업구(공단) 10여개, 항구, 공항, 발전소 등이 있는 대규모 개발계획이었다. 건설사들은 이러한 프로젝트에 많은 기대를 하였다. 그러나 1990년대 초 현대 정주영 회장의 대통령선거 출마, 1차 북핵위기, 김일성 주석 사망 등으로 인하여 초기에 발표된 개발사업은 추진되지 못하였다.

[그림 1] 두만강 개발계획 개념도 (출처: 기획재정부)

한국기업이 투자한 최초의 건설협력사업은 1996년 착공한 금강산샘물공장으로 보인다. 금강산샘물공장은 미국산 건축자재를 사용하였고, 북한인력이 시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지역에 한국기업이 본격적으로 건설사업에 참여한 것은 1997년 시작된 경수로 지원사업(KEDO)이었다. 1차 북핵 위기를 해결하기 위하여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에서 북한에 경수로지원이 결정되었으나, 참여국의 공사비 부담, 원자로 사양 등의 결정이 지연되면서 1997년 우선 숙소, 사무실, 편의시설 등 지원시설을 우선 착공하였으며, 한국전력, 현대, 대우, 동아, 한국중공업(현재 두산중공업) 등의 직원이 북한에 체류하면서 공사를 시작하였다. 경수로 지원사업은 국제기구(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KEDO, The Korean Peninsula Energy Development Organization)를 통하여 추진되었으나, 분단 후 최초로 북한지역에서 이루어진 인프라 건설공사였으며 한국의 인력이 대규모로 북한에 상주한 최초의 사례이기도 하다.

[그림 2] KEDO 생활단지 배치도 (출처: 단국대 김성신 명예교수 제공)

1997년에는 남북교역규모가 3억 달러에 달하였으나, 남북경협은 대부분 단순교역 및 위탁가공에 머물고 있었으며 건설협력사업은 경수로 지원사업을 제외하면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었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남북교류협력과 건설협력사업이 본격화되었다. 현대와 북한의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이하 ‘아태’)는 금강산관광사업을 합의하였고, 그 해 11월 첫 관광선을 띄웠다. 금강산관광으로 일반인도 북한을 방문할 수 있었으며, 2008년 중단되기 전까지 누적관광객은 195만 6천명에 달하였다. 금강산관광을 위하여 관광휴게소, 공연장, 온천장, 숙소, 부두, 도로 건설과 평양에 실내체육관 공사가 시작되었다. KEDO의 원자로 본 공사도 1999년 착공되었으며 2000년 6.15정상회담 후 개성공업지구개발과 남북철도, 도로연결사업이 합의되었다. 경협과 관련된 건설공사 외에도 영통사 및 신계사복원, 봉수교회, 평양어린이어깨동무병원, 금강산이산가족면회소, 평양과학기술대학교 등 남북교류를 위한 건설사업이 2010년까지 지속되었다. 남북교역규모는 2005년에는 10억 달러를 넘었으며, 2010년에는 19억 달러를 기록하였다. 1999년 남북교역액 약 3억 달러에 비하면 10년 만에 약 6배 증가한 것이었다.

남북경협사업은 2008년 금강산관광사업중단, 2010년 천안함폭침에 따른 5.24조치(대북투자제한조치)로 어려움을 겪었으며, 건설협력사업은 모두 중단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교역은 개성공단의 성장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2015년에는 27억 달러에 달하였으나, 2016년 개성공단이 전면 중단되면서 25년간 이어왔던 남북경협은 완전히 단절되었다. 현재는 비록 남북교류가 전면중단상태이지만, 1990년부터 2015년까지 남북은 상당한 규모의 경제협력사업과 남북건설협력사업을 시행하였다. 이에 따라 한국의 많은 공공기관, 건설사, 설계업체가 북한지역에서 프로젝트를 수행하였으나, 이러한 경험들이 공유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향후 경험을 체계적으로 공유하고 활용하는 방안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개성공업지구의 개발 개요와 현황

1998년 현대그룹의 정주영 명예회장이 소떼와 함께 판문점을 통하여 방북하여 대북사업을 시작하였다. 2000년 초 현대와 아태는 개성공업지구 개발을 합의하였으며 2000년 6.15 정상회담시 정부 간 합의를 통하여 본격적인 개발이 추진되었다. 또한 개성공업지구 개발을 위하여 경의선 남북연결철도, 도로연결과 파주에서 개성으로 전력공급도 합의하였다. 전력선연결은 1948년 5월 14일 북한이 전력을 차단한 후 50여년 만에 복원되는 것이었으며, 남북철도, 도로연결사업은 분단 후 최초의 남북정부간 합의에 의한 인프라건설사업이었다.

[그림 3] 개성공업지구 개발계획도 (출처: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그림 4] 경의선 남북연결도로 (출처: 통일부)

[그림 5] 경의선 철도(북측구간) (출처: 현대아산)

개성공업지구개발을 위하여 북한은 2002년 12월 개성공업지구법을 제정하였으며, 2003년 6월 개성공업지구를 착공하였다. 개성공업지구의 개발목표는 남한의 자본과 기술, 북한의 인력과 자원을 결합하여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공업지구 개발하는 것으로, 산업단지가 아닌 무역, 관광, 물류 등의 복합적인 기능을 가진 경제특구로 개발하는 것이었다. 위치는 개성시 봉동리, 동창리 일대이며, 규모는 66km2(2000만 평)으로 계획되었다. 개발계획의 66km2에는 개성시 400만평이 포함된 것이었다. 개발은 단계별로 개발하기로 했으며, 3단계까지 개발 시 계획인구는 50만명(취업자 35만명, 피부양가족 15만명), 입주기업은 2000개 (1단계 300개, 2단계 700개, 3단계 1000개), 총 생산액은 연간 200억 달러가 목표였다.

[그림 6] 개성공업지구 단계별 면적표 (출처: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2016년 중단전까지 개성공업지구는 1단계 100만평만 개발된 상태였으며, 공장필지 200개 중 91개 필지에 공장이 입주하여, 입주율은 약 45.5%였다. 1개 필지에 여러 개의 기업이 입주한 경우도 있어 입주기업은 125개사였다. 개성공업지구는 2004년 12월 리빙아트 공장에서 첫 제품을 생산하였으며, 2015년에는 생산액이 약 5억1천549만 달러였고, 북한근로자를 약 5만 4천명 고용하고 있었다.

[그림 7] 개성공업지구 년도별 생산액 및 근로자수 (출처: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기반시설은 북한의 시설이 열악하여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도로, 전력망, 상·하수관로, 정·배수장, 폐수처리시설, 폐기물 처리시설(매립장, 소각장) 등을 국내기준에 준하여 건설하였다. 또한 공업지구운영을 위하여 개성공업지구 관리위원회 청사(개성공업지구 종합지원센터), 직원숙소, 편의점, 병원, 소방서, 기술교육센터 사무공간, 숙소, 식당, 운동시설, 각종 편의시설 및 지원시설도 건설하였다. 그리고 24개월 미만의 영유아를 위한 200명 수용규모의 탁아소도 건설하였다.

[그림 8] 개성공업지구 종합지원센터 (출처: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그림 9] 개성공업지구 기술교육센터 (출처: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그림 10] 개성공업지구 전경 (출처: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개성공업지구는 2004년 가동 후 많은 위기가 있었다. 2010년 5.24 조치로 인하여 개성공업지구의 추가투자가 금지되었으며, 2013년에는 북한의 북한근로자 철수조치로 인하여 6개월 가동이 중단되기도 하였으나, 2016년 2월 개성공업지구가 전면중단되기 전까지 생산액과 북한근로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자생력을 보여주었다.

[그림 11] 2016년 개성공업지구 철수 모습 (출처: 뉴시스)

개성공업지구 개발의 성과

개성공업지구는 운영기간 동안 많은 어려움이 있었으나, 대규모 인력의 고용과 지속적인 생산량 증가 등을 고려하면 상당한 성과가 있었으며, 이전의 경협사업과는 다른 발전된 형태의 사업이었다. 개성공업지구는 남북정부간 합의에 의하여 시작되었으며, 개발을 위한 개성공업지구법, 하위규정 등 법규를 제정하여 투자를 보장하였다. 개성공업지구 개발 전 개별적인 위탁가공사업 등은 북한의 방문거부, 물자반출지연, 계약위반 등으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았으나 개성공업지구는 제도적 보장으로 인하여 지속성과 수익성 확보할 수 있었으며, 입주기업 대부분이 이익을 낼 수 있었다.

최초로 북한근로자를 직접 고용하고, 남한 관리자가 공장에 상주하면서 관리를 시행한 것도 개성공업지구가 거둔 성과였다. 이전의 대부분의 경협사업은 북한인력을 직접 고용하지 않는 위탁가공형태였으며, 남한관리자가 북한에 상주할 수도 없었다. 금강산 관광사업도 북한인력을 고용하지 못하여 건설은 단순작업도 남한작업자가 하였고, 관광버스 운전 및 판매는 중국의 조선족을 채용하여 활용하였다. 개성공업지구 개발 후 남북간에 육로를 통한 방문과 물자운송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전에는 북한을 방문하려면 주로 중국을 경유하는 항공편을 이용하였고, 물자는 해상으로 운송하였으며, 금강산관광도 2003년 전까지는 크루즈선을 이용하였다.

개성공업지구가 국내 경제에 미친 영향도 있었다. 개성공업지구가 국내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었지만, 인건비 상승으로 어려운 한계산업에 기회를 제공하였으며, 남한의 자본, 기술과 북한의 인력, 토지, 자원을 결합하는 남북산업분업체계 구축의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또한 개성공업지구는 남북긴장 완화에도 기여하였으며, 북한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는 역할도 하였다.

개성공업지구 개발은 북한에게 있어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업이었다. 개성공업지구는 북한에서 유일하게 실현된 경제특구였다. 북한은 이전에 나선경제특구, 신의주경제특구 개발을 추진하였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으며, 2010년 이후 추진한 황금평-위화도 경제특구 및 경제개발구도 실제로 개발되지 못하였다. 개성공업지구는 북한경제에도 상당한 기여를 하였다. 2014년 개성공업지구의 생산액은 단순히 계산하면 북한 GNI(국민총소득)의 1.5%에 달하였다. 개성공단 1단계가 40%만 운영된 상태에서 이룬 성과인 것을 고려하면, 1단계 규모 산업단지 3개를 개발하는 경우 북한 GNI의 10% 이상에 기여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개성공업지구의 2014년 생산액은 북한 총 교역액의 23.5%를 차지하였다. 개성공업지구는 북한의 시장경제운영방식의 학습과 사회변화에도 역할을 하였다. 개성은 공업지구 개발 전에는 낙후한 접경도시였으나, 개발 후 개성은 잘사는 도시가 되었으며, 건물의 신축과 개보수로 도시의 풍경이 바뀌었고 차량도 증가하였다.

개성공업지구 개발사업은 남북건설협력 측면에서도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개발 측면에서 개발계획수립은 남한이 일방적으로 수립한 것이 아니고 2001년부터 2005년까지 8차에 걸쳐 북한과 협의를 거쳐 확정하였다. 이 과정에서 서구식 도시계획 방법을 북한에 전수한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북한은 토지의 사유화를 인정하지 않고 있어, 사유토지의 사용용도를 제한하는 토지 이용계획이나 분양방법 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였으나 개발계획 협의과정을 통하여 제한적이지만 서구식 도시계획제도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중국은 1978년부터 개혁개방을 추진하여, 2010년 GDP규모가 세계2위로 발전하였다. 중국의 성공에 경제특구가 견인차 역할을 하였으며, 경제특구 성공의 요인은 서구의 도시계획 및 개발방식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이었다. 중국은 1985년 심천경제특구의 도시기본계획 수립을 위하여 외국 전문가를 초빙하여 서구식 도시계획제도를 도입하였으며, 1989년에는 도시계획법을 개정하여 전국에 서구식 도시계획제도를 적용하였다. 이러한 측면에서 개성공업지구 개발계획 수립과정에서 북측에 도시계획제도를 전수한 것은 중요한 성과였다고 생각된다.

건설공사 시 남한건설사가 북한근로자를 고용한 것도 개성공업지구개발사업이 최초였다. 이전에는 건설사업 시 건설 자재를 남측에서 제공하고 북측이 시공하였고, 북한이 기술이 부족한 경우 남측 기술자가 기술지도를 하는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경수로 지원사업(KEDO)시 북측근로자를 일부 고용하였으나, 임금문제로 주로 우즈베키스탄 근로자를 고용하여 공사를 하였으며, 금강산관광사업 시에는 북한근로자를 고용할 수 없어 남한근로자가 모든 공사를 하였다. 북한근로자의 직접 고용은 공사비를 대폭 절감하는 효과가 있었다. 또한 개성공업지구에서는 일부 공사를 북한 건설사에 하도급을 주어 수행하기로 하였다. 이러한 북한근로자의 직접고용과 북한 건설사의 활용경험은 향후 북한개발 시에도 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개성공업지구가 이러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이전의 경협사업과 차별되는 요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개성공업지구 성공의 가장 중요한 요인은 개성공업지구가 남북정상간 합의에 의하여 시작되었으며, 개발을 위한 개성공업지구법, 하위규정 등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였고, 장관급회담과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경추위) 등 당국간 회담에서 개성공업지구와 관련된 중요한 사안에 대하여 논의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사업의 안정성이 보장되었다는 것이다.

[그림 12] 2007년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주동찬 전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장 참석사진 (출처: 통일부)

개성공업지구의 또 다른 성공요인은 개발 전 개발계획을 수립하고, 남한수준의 기반시설을 갖추었다는 것이다. 또한 기반시설공사에 공공자금(남북협력기금)을 투입하였고 공공기관에서 시설을 운영한 것도 개발을 성공시킨 요인이었다. 그리고 개성공업지구의 운영을 남측인원으로 구성된 관리위원회가 담당한 것도 중요한 부분이었다. 남측인원이 관리를 담당함으로써, 북측의 무리한 요구도 협의를 통하여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

개성공업지구 개발의 한계

개성공업지구는 성과가 있었지만 한계도 있었다. 개성공업지구는 2004년 첫 제품 생산 후 12년간 운영되었으나, 2016년 2월 전면 중단되었다. 남북관계에 따른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개성공업지구는 자생력을 보여주었으나, 결국 외부요인에 의하여 중단될 수밖에 없었던 한계가 있었다.

개성공업지구는 고용인력 확보에도 많은 어려움이 겪었다. 개발 전 개성시의 인구는 30만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출퇴근이 가능한 지역의 인구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적은 수준이었으므로 충분한 근로자를 확보할 수 없었다. 이러한 문제는 개발계획 수립 시 충분한 현지조사를 할 수 없었고, 북한체제의 특성으로 인구이동의 제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2007년 출퇴근 도로 개설과 근로자용 기숙사 건립 등을 추진하였으나 남북관계의 악화로 추진되지 못하였다.

개발계획에도 일부 문제점이 있었다. 개발계획이 운영을 담당하는 관리위원회가 구성되기 전 수립되어 운영계획이 반영되지 않아 공공시설건립과 교통수단 운영 시 어려움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또한 개발계획에 개발대상지역 주변지역 개발계획이 반영되지 않았던 것도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다. 일정지역이 개발되면 주변지역에 인구가 증가하거나, 환경을 악화시킬 수도 있는 등 영향을 주고 받을 수밖에 없으며, 주변지역은 근로자들의 생활공간이라는 측면에서도 개발계획에 주변의 발전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개성공업지구는 남한인력의 방문이 용이하고, 상주도 가능하였으므로 경제협력 외에 각종 남북교류, 협력사업의 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었으나,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한 것도 아쉬운 점이다.

북한개발 전략

2010년 이후 남북관계는 어려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18년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면서 남북관계 변화가 예상되었으나 2019년 2월 북미하노이회담 결렬, 2020년 코로나유행으로 남북관계는 다시 교착상태에 빠졌다. 최근 문재인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에 대하여 북한의 긍정적 반응으로 남북관계개선에 대한 기대가 다시 커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코로나가 계속되고 있어 낙관하기는 어렵지만, 남북간의 경제적, 안보적 이익을 고려하면 남북관계 개선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남북교류재개 시 경협사업은 더욱 대규모로 추진될 것이며, 특히 초기에는 건설 및 개발사업이 중심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2018년 국토부는 북한의 도로ㆍ철도 등 건설을 위하여 60조원이 필요할 것이라고 추정하였으며, 북한이 2013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경제개발구 개발에 참여하는 경우 북한 개발을 위한 건설시장의 규모는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국제제재 완화 혹은 해제에 따라 북한개발이 본격화되는 경우 주변국들과 개발 주도권 확보를 위한 치열한 경쟁도 예상된다.

중국은 2010년 남북경협 중단 후 남한의 교역 대부분을 대체하였으며, 2012년부터는 나선 경제특구와 황금평-위화도 경제특구 공동개발에 합의하기로 하였다. 또한 중국은 2010년 이후 경제규모가 세계 2위이며 대규모 인프라 및 경제특구개발 경험도 풍부하므로 북한 개발 시 남한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가 될 것이다. 싱가포르는 쑤저우 공업원구를 중국과 공동개발 하였고 이후 중국에 10여개 이상의 산업단지를 개발하였으며, 베트남에서도 7개의 산업단지를 개발하는 등 해외 산업단지 개발에 많은 경험이 있고 GIC 및 테마섹 등 대규모 국부펀드(sovereign wealth fund)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2010년부터 조선익스체인지라는 NGO단체를 통하여 북한인력에 대한 교육을 시행하고 있으며 특히 북한의 건축가에 대한 교육을 시행하고 있기도 하다. 북한은 싱가포르의 개발 방식에 대한 관심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도 2000년대 중반부터 나진-하산 프로젝트와 PNG연결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므로 대규모 북한의 건설시장에 대해 남한기업이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대응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남북관계 개선 시 중국과 베트남이 경제특구개발을 통한 경제발전을 참조하여 외자유치를 통한 경제특구(개발구)개발을 중점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북한에서 유일하게 실현된 경제특구인 개성공업지구 경험을 북한 경제특구개발 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정부는 북한경제개발을 위하여 신한반도경제구상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신한반도경제구상은 남한의 구상이므로, 남북 간의 교류 본격화 시 북한과 협의를 통하여 북한이 원하는 개발방향을 반영하여 북한국토개발 계획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북한과의 협력을 통하여 남한이 주도적으로 북한개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국제적 경쟁과열, 난개발, 중복투자 방지를 위하여 북한개발에 대한 국제적 협력방안 마련도 필요하다.

그리고 경제특구를 북한과 공동으로 투자하여 개발할 필요가 있다. 금강산관광사업과 개성공업지구사업은 남한이 전체를 투자하여 개발하였으나, 북한이 개발사업에 투자에 참여하는 경우 책임감을 가지고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북한도 2013년 개발구법을 제정하면서 개발구 개발을 합영회사가 할 수 있고, 개발사업 토지이용권을 투자할 수 있도록 규정하여 경제특구(개발)를 공동으로 개발하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또한 장기적으로 북한이 경제특구를 자체적으로 개발할 수 있도록 남한의 개발경험전수 프로그램을 운영할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남한은 저개발국을 대상으로 지식전수프로그램(KSP)를 운영하여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북한을 대상으로 개발경험전수 프로그램이 어렵다는 의견도 있으나, 이미 2000년대 초반 개성공업지구법 제정 시 남한이 지원을 한 사례가 있으므로 경험전수 프로그램 운영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경제특구개발 시 지역개발개념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지역개발에 대한 개념은 다양하지만, 경제특구의 하드웨어(기반시설, 건축물 등)개발이 아닌 개발대상지와 주변지역의 연계발전을 도모하고, 지역주민들의 생활과 경제향상을 목표로 하는 포괄적인 개발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지역개발개념을 도입하면 경제특구의 경제성장만이 아니라, 지역주민들의 생활의 질 개선과 소득을 증가 시킬 수 있으며, 또한 문화교류, 인도적 지원 등 남북협력사업의 거점으로 개발도 가능할 것이므로 남북 간 이질감 해소와 통합에 더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