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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향∙정보

궁금한 북한의 이모저모

평양의 도시 건설 역사거리조성의 원칙이 다양성과 입체성에서 세계적 추세와 편의성으로 변화
(광복거리에 들어선 대형슈퍼마켓이 대표적 사례)

정창현 소장
머니투데이 평화경제연구소

1970년대부터 거리별 주택단지 조성 본격화

역사적으로 수도와 주요 도시들의 중심부는 ‘계획도시적 성격’을 보여준다. 중국이 그러했고, 삼국시대 때 고구려, 백제, 신라의 수도도 계획도시로 건설됐다. 수도성 안에 동서대로와 남북대로가 구획되고, 그 주변에 관청과 주거단지가 조성됐다. 고려의 개경과 조선의 한양의 중심부에는 아직도 그 시대에 건설된 대로가 여전히 활용되고 있다.

고구려의 수도성으로 건설된 평양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평양은 1950년 발생한 3년간의 전쟁으로 완전히 파괴됨으로써 더욱 뚜렷하게 계획도시로 재건설될 수 있었다. 전후 북한의 도시와 주거단지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은 거리의 형성이었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의 편의나 기능성도 고려사항이었지만, 더욱 주요한 것은 국가의 정체성과 이념성을 시각화 하는 정치적 지향이었다.

이러한 북한 도시형성의 특징은 1970년대 김정일이 후계자로 등장한 후 도시건축에서 다양성과 입체성을 강조하면서 더욱 뚜렷해졌다. 그는 종래의 거리형성 방법에서 벗어나 건축창조에서 ‘혁명적인 전환’을 시도했고, 1991년 출간한 『건축예술론』에서 이를 체계화 했다.

북한은 1970년대 중반부터 2011년 김정일 위원장 사망 때까지 평양에 모두 13개의 거리별 주거단지를 건설했다. 그중 광복거리, 문수거리, 통일거리 등 신도시 급 규모의 주거 단지들은 김일성 시대에 만들어진 평양의 도시 경관을 완전히 뒤바꿨다. 평양뿐만 아니라 원산의 송도원거리, 함흥의 사포거리, 청진의 남청진거리, 신의주 역전거리, 개성의 청년거리와 통일거리 등도 비슷한 방식으로 조성됐다. 이들 주거단지의 계획에서 가장 결정적인 기준은 웅장함, 통일성, 다양성, 입체성 등으로 표현되는 김정일 위원장의 미학적 원칙이었다.

이후 북한의 건축가들은 “거리의 형성에서 선차적으로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요구는 통일성과 다양성, 입체성을 보장하는 것”이고, “거리 형성에서 통일성과 다양성, 입체성을 보장하여야 예술로서의 건축의 고유한 정서적 감화력과 조형예술적 질을 높일 수 있으며, 도시 전체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게 되며, 웅장성과 화려함을 담보할 수 있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이러한 도시건설의 원칙은 1980년대 초반에 건설된 창광거리와 락원거리 형성에서 구체적으로 적용됐고, 80년대 후반에 대대적으로 건설된 광복거리에 전형적으로 나타났다. 특히 광복거리 건설 때부터는 높은 건물과 낮고 건물들 사이에 일정한 리듬이 교차되도록 하여 시각적인 통일감을 주는 ‘통일성’보다 ‘다양성’과 ‘입체성’이 강조됐다.

[그림 1] 1989년 완공 직후 광복거리 전경 (오른쪽 4층 건물이 광복백화점이다)

거리 조성에서 통일성, 다양성, 입체성 강조

다양성은 주로 외관상 비반복적 형태를 뚜렷하게 드러내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광복거리의 경우 건물 형태에 다양성을 주기 위해 원통형, 바람개비형, 다각형, 에스자형, 계단형 등 다양한 형의 탑형 주택(타워식 고층아파트)을 도입했고, 입체성을 구현하기 위해 40층 이상의 고층아파트를 저층아파트와 배합해 건설했다. 건물들 사이에 높이차를 만들고 서로 어긋나게 만드는 배치를 통해 도시 경관에 다양성과 입체성을 주고자 시도한 셈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광복거리는 다양성과 입체성을 바탕으로 기존 주거 단지의 단조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설계된 ‘김정일 시대의 새로운 주거 계획 모델’로 평가된다.

광복거리는 평양시 만경대구역의 광복다리에서 만경대 갈림길 유래비에 이르는 5.4㎞ 구간의 거리이다. 광복거리는 1989년 7월에 열리는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을 2개월 앞두고 완공됐다. 국제적 행사를 앞두고 발전된 평양의 모습을 과시하고자 하는 정치적 배경이 깔려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광복거리는 기존의 폭 78m 도로를 100m 직선도로 확장하고, 도로 양편에 살림집·문화시설·교육시설·편의시설 등 9개 구역으로 나눠 건설됐다. 살림집 구역에는 12∼42층 규모에 2만 5천 세대가 거주하는 고층아파트들이 들어서 있고, 문화시설 구역에는 만경대학생소년궁전·평양교예극장 등이 들어섰으며, 상업편의시설 구역에는 청년호텔, 광복백화점, 향만루식당 등이 자리 잡았다.

1970년대 중반부터 약 15년간 조성된 평양의 거리와 주거단지, 주체사상탑·개선문과 같은 상징물, 고려호텔·창광원·빙상관·청류관·인민대학습당·5월1일경기장과 같은 주요 건축물을 북한에서는 ‘기념비적 건축물’이라고 부르고, 이때를 ‘창조와 건설의 전성기’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거치며 평양을 비롯한 북한의 도시 건설은 사실상 10년간 중단됐다. 2000년대 초반 필자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 북한이 자랑하던 광복거리는 전기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상황이었고, 광복거리의 시작을 알리는 광복백화점은 물자부족으로 문을 닫은 상태였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 세계적 추세와 편의성 강조

2000년대 중반이후 북한은 평양재건축사업에 착수했고, 김정은 정권 출범이후 속도를 높였다. 2012년 만수대지구 청전거리를 시작으로 2013년 은하과학자거리, 2014년 위성과학자주택지구, 2015년 미래과학자거리, 2017년 여명거리 등 거의 매해 신도시급 거리 하나가 조성되는 ‘속도전’이 벌어졌다. 그리고 2021년부터는 평양외곽의 낙후지역인 사동구역 송신·송화지구의 1만 세대 살림집 건설을 시작으로 평양에 5만 세대, 지방의 주요 도시와 군에 새로 살림집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북한은 “21세기의 문명개화기, 건설의 대번영기”라고 선전한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계획적, 미학적 측면에서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 김정일 시대와 뚜렷한 차별성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하나의 건축물을 설계해도 주체성과 민족성, 현대성, 다양성과 함께 사상성과 정치성을 완벽하게 보장하며 건축의 조형예술성을 끊임없이 혁신”할 것을 주문했다. 이러한 요구는 과거 김정일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방점은 달라졌다.

북한은 김정은 시대에 이뤄진 건설사업에 대해 “조선노동당이 펼친 건설의 대번영기는 인민의 지향과 요구, 편의와 미감을 절대의 기준으로 하여 건축사상과 이론, 건설정책을 독창적으로 수립하고 철저히 구현하여온 인민대중제일주의 건축의 새시대”라고 평가한다. 건설사업에서 인민들의 지향과 요구, 편의성을 최우선 고려사항으로 삼고, 여기에 사상예술성과 실용성을 보장하는 방향이다.

2009년 김정은이 새로운 후계자로 등장한 후 북한에서 강조되기 시작한 핵심키워드는 ‘세계적 추세’와 ‘실리’였다. 김 위원장은 집권 이후 건설사업에서도 주체성과 민족성을 고려하면서도 세계적인 추세와 다른 나라의 좋은 것들을 받아들일 것을 강조했고, 주민들의 편의성을 자주 거론했다. 김정일 시대 거리와 주거단지 조성에서 다양성과 입체성이 강조되면서 거리의 외부 미관이 중시되고 상대적으로 주민들의 편의성이 소홀히 된 점을 간접적으로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그림 2] 최근 광복거리 전경 (오른쪽이 광복백화점을 리모델링한 ‘광복거리상업중심’이다)

북한의 이러한 지향은 광복거리의 광복백화점을 리모델링해 새로 문을 연 ‘광복거리상업중심’을 통해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광복거리상업중심은 2012년 1월에 영업을 시작한 북한 최초의 대형마트이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마지막으로 현지시찰한 곳이기도 하다. 북한은 광복거리상업중심 개업에 즈음해 “정보화, 디지털화를 갖춘 상업중심에는 가정용품과 전자제품, 식료품, 섬유 잡화 등 다양한 매장들을 갖춰 인민들이 기호에 맞는 다양한 상품들을 구매할 수 있게 됐다”고 선전했고, 개업식에서 북한 관계자는 “양질의 서비스로 광복지구 상업중심이 조선인민들의 생활개선과 조중 양국 국민에게 혜택을 가져다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대형마트를 개업하면서 ‘조중 친선’을 언급한 것은 이 매장이 중국 자본의 투자로 이뤄졌기 때문이었다. ‘세계적 추세’에 맞게 외자유치를 통해 문을 닫은 광복백화점을 대형슈퍼마켓으로 변모시킨 것이다.

세계적 추세와 편의성을 결합시킨 ‘광복거리상업중심’

광복거리상업중심은 판매방식에서도 고객들이 상점 안을 자유롭게 오가며 필요한 상품을 고르고 결제만 판매원에게 맡기는 ‘슈퍼마켓식 방식’을 처음으로 도입했다. 과거 북한의 백화점과 상점들은 고객이 판매원에게 구입하고 싶은 물건을 고르면 판매원이 이를 꺼내주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손님이 진열대에 있는 상품을 선택하면 판매원이 전표를 써주고, 이것을 가지고 계산대에서 결제한 후 다시 판매원에게 가 영수증을 제시하면 상품을 내주는 형식이다. 이런 형식을 북한에서는 ‘닫긴 매장을 위주로 하는 상점’이라고 부른다. 북한 주민들은 상품이 다양하지 않고 구매량이 제한돼 있었기 때문에 이 같은 판매방식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런데 2011년 개장을 앞둔 ‘광복거리상업중심’을 직접 시찰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백화점에서는 구매자들이 물건을 마음대로 만져볼 수 없지만 슈퍼마케트에서는 구매자들이 물건을 마음대로 만져보고 자기들의 기호에 맞는 상품을 사갈 수 있습니다”라고 설명하며 ‘닫긴 매장’이 아닌 ‘열린 매장’ 방식으로 운영하도록 지시했다.

[그림 3] 평양 광복거리 ‘광복지구상업중심’의 쇼핑하는 최근 모습 (동영상캡쳐)

북한은 새로 도입한 슈퍼마켓식 상점이 편리하고, 주민들의 이용도가 높아지자 이것을 전국적으로 보급하기 시작했다. 2020년 북한은 “소비자들의 편의를 중시하는 선진적이며 다양한 활동을 장려”하고 있다며 전국 각지의 상업봉사망을 슈퍼마켓식 방식으로 개선하고 있다고 밝혔다. 평양에서는 평양아동백화점, 평천구역 미래공업품상점, 서성구역 장경식료품상점, 사동구역 장천상점 등에서 이미 성과를 거뒀다고 한다.

광복지구상업중심을 시작으로 새로 등장한 ‘슈퍼마켓식 상점’들은 상품의 입고, 보관, 출고, 판매, 대금결제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컴퓨터화하고, 상품에는 바코드를 붙여 품목과 개수 등 판매실적을 바로 알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상점 내부는 한국의 대형마트나 기업형 슈퍼마켓(SSM)처럼 고객들이 카트를 밀거나 바구니를 들고 쇼핑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광복거리상업중심의 등장은 상업망에서 ‘세계적 추세’ 수용과 ‘주민 편의성’을 고려하는 북한의 지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이후 대단지 거리 조성에도 ‘편의성’은 주요한 화두가 되었다. 미래과학자거리의 미래상점, 려명거리의 ‘상업종합구’ 조성 등이 그 사례일 것이다.

[그림 4] 2017년 완공된 여명거리 주택단지의 중심에 조성된 ‘상업종합구’ 모습

지난 2월 8일 열린 ‘제2차 건설부문일꾼 대강습’에 보낸 서한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당에서는 이번 대강습을 계기로 건설사업 전반을 새롭게 혁신하여 주체건축을 세계적 수준에서 또 한번 질적으로 비약시키자고 한다”라며 ‘새로운 건설혁명’을 독려했다.

이어 김덕훈 내각 총리는 △ 건설에서 선 편리성, 선 미학성을 보장하는 문제, △ 건축물을 지대적 특성에 맞게 비반복적으로, 친환경적으로 일떠세울데 대한 문제, △ 설계와 시공, 운영단위의 3자합의를 강화하는 문제 등 원칙적인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원칙과 계획이 새롭게 설정됐다고 하더라도 실제 설계와 건설공법 등에서 나타나고 있는 ‘결함’들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해결하고, 예산의 뒷받침이 이뤄질지는 지켜봐야 할 문제이다. 실제로 이번 ‘제2차 건설부문일꾼 대강습’에서도 ‘건설부문의 물질기술적 토대’가 원만히 준비되어 있지 못한 점이 지적됐다. 다만 북한이 여전히 ‘속도전’을 고집하고는 있지만 세계적 추세를 수용하고 주민 편의성을 최우선으로 내세우기 시작한 점, 평양과 지방의 균형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점, 외관의 다양성이 아닌 실제 주택 설계의 다양성을 강조하고 있는 점 등은 건축과 건설분야에서의 대외·남북교류에서 긍정적인 신호라고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