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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향∙정보

궁금한 북한의 이모저모

중러 정상회담에서 왜 두만강 하류 통항문제가 논의됐을까?

정창현 소장
머니투데이미디어 평화경제연구소

우려할 만한 사안이 많이 포함된 중러 공동성명

국제정세가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을 정도로 요동치고 있다. 미국의 유일 패권이 흔들리며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고,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은 2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한반도 주변에서는 한미일 협력체제가 강화되고, 이에 맞서 북중러 간 협력체제도 단단해지고 있다. 지난 5월 16일 있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간 정상회담 이후 발표된 공동성명은 향후 한반도 정세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그림 1] 2024년 5월 16일 베이징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갖고 있다. (사진출처: 뉴시스)

5월 16일 발표된 동성명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 등 서방에 맞선 양국 간 ‘전략적 공조’를 재확인했다. 두 정상은 공동성명을 통해 미국 중심의 세계 ‘일극’ 체제에서 탈피해, 정치·경제적 ‘다극화’를 함께 이끌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군사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중러는 “군사 분야 신뢰와 협력을 강화하고, 합동 훈련과 군사 훈련의 규모를 확대할 것”이라며 경제협력을 한층 더 확대하자는 데도 합의했다. 특히 러시아는 한미일 연합군사훈련에 대응해 중국과 북한에 합동군사훈련을 제안하기도 했다. 중국과 북한이 이를 즉각 수용하지는 않았지만 정세 변화에 따라서는 가시화될 가능성도 있다.
미국 CNN 방송 등 서방 언론들은 푸틴 대통령이 이번 방중에서 실질적 성과는 미미했다고 평가했다. 실제 푸틴 대통령은 총력을 기울인 ‘시베리아의 힘 2’ 가스관 계약을 맺지 못한 채 귀국했다.
미국은 즉각 “중국은 양손에 떡을 쥘 수는 없다”며 중국 정부가 러시아 및 서방과 동시에 관계를 유지할 순 없다고 중국에 경고를 보냈다. 중국은 미국의 압박을 의식한 듯 이번 공동성명에서 ‘무제한 협력’이란 표현을 뺐고, 미국을 원색적으로 비난하지도 않았다. 중국 언론들은 공동성명 내용을 보도하면서 ‘미국’이란 단어를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중국으로서는 미국 견제에 맞서 러시아와 공조를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중국을 상대로 첨단 기술 접근을 막겠다는 미국과 관계 개선도 중요하다는 점에서 수위를 조절할 필요가 있었다. 러시아와의 전략적 관계 유지와 미국과의 대결 회피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으려는 중국의 고민이 드러난 대목이다. 그러나 이번 중러 공동성명의 한반도 관련 내용은 여러 가지 우려할 대목이 포함되어 있다.

한반도 비핵화와 대북제재 이완

첫째는 한반도 비핵화와 대북제재 문제에서 러시아에 이어 중국까지 변화된 입장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중국은 이번 러시아와의 공동성명에서 한반도 문제에 대한 기존의 입장을 수정해 북한의 입장을 노골적으로 대변하는 태도를 나타냈다.
중국은 지난해 10월 공식 발표한 <신시대 중국의 주변외교정책 전망> 문건에서 한반도 문제가 복잡하고 난해하다며 쌍중단(북한의 핵·미사일 실험과 한미 군사훈련 동시 중단)과 쌍궤병진(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전환 동시 추진) 해법을 재확인했다. 중국은 2017년 한반도 위기 국면에서 ‘쌍중단, 쌍궤병진’을 해법으로 내놓은 후 이를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그러나 지난해 3월 열린 중러 정상회담에서 채택한 공동성명에는 ‘쌍중단’이 빠진 채 ‘쌍궤병진’만 담겼고, 중국 당국자들의 발언에서도 ‘쌍궤병진’만 원론적으로 강조하는 빈도가 높아졌다. 그리고 올해 5월 중러 정상회담 공동성명에는 ‘쌍궤병진’이란 단어조차도 빠졌다.

“양국은 미국 및 그 동맹국의 군사 영역에서의 위협 행동과 조선과의 대결 및 유발 가능성 있는 무장 충돌 도발로 한반도 형세의 긴장을 격화하는 것에 반대한다. 양국은 미국이 효과적인 조치를 취해 군사적 긴장 형세를 완화하고, 유리한 조건을 만들며, 위협·제재·탄압 수단을 버리기를 촉구한다. 조선과 다른 관련 국가가 상호 존중하고 서로의 안보 우려를 함께 고려한다는 원칙 위에서 협상 프로세스 재가동을 추진하기를 촉구한다. 양국은 정치·외교 수단이 한반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출구임을 거듭 천명한다.”

중국이 ‘쌍궤병진’ 정책을 완전히 폐기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공동성명에는 북핵 고도화와 핵미사일 실험 위협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쌍중단’을 언급하지 않으면서 사실상 북한의 핵을 용인하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는 것이다. 대신 공동성명은 “동북아시아의 세력 균형을 바꾸려는 미국의 패권적 행위 시도에 반대한다.”는 강경한 대미 메시지를 담으면서 ‘한반도 비핵화’ 문제는 빼고, 한미연합훈련과 한반도 긴장 고조만을 거론하며 북미 간 대화, 관련 국가들의 협상 프로세스 재가동을 강조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의 책임이 미국에 있으니 직접 당사자인 미국이 해결에 적극 나서라는 의미다. 자연스럽게 중·러 양국은 한반도 비핵화 해법에서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를 갖췄다. 특히 지난해 중러 정상회담 이후 두 나라는 “대북 제재와 압력을 취해서는 안 된다.”며 “대화와 협상만이 한반도 문제 해결의 유일한 길”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중국은 2006년 10월 북한이 1차 핵실험을 단행하자 ‘제멋대로(悍然)’라는 단어를 동원해 비난하며 대북 압박에 나섰고, 그 후 북한이 핵실험을 할 때마다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안에 동조했다. 2018년에는 북한에 대한 직접 투자를 금지했다.
그러나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을 계기로 정세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국제정치에서 영원한 관계는 없다. 대북제재에 동참했던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전략적 가치가 올라가자 대북정책을 바꾼 것이다. 지난 3월 28일 러시아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대북제재 위원회 전문가 패널의 임기 연장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대북제재를 감시할 ‘카메라’를 러시아가 부쉈고 중국도 기권표를 던져 사실상 동조했다. 전문가 패널이 없어진다고 해서 대북제재위원회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제재가 제대로 지켜지는지 감시하는 공신력 있는 기관이 사라져 대북제재 위반에 대해 명확한 실상을 파악하기가 어려워지고 논란만 가열될 전망이다.
지난 5월 27일 열린 한중일 정상회의 공동선언문에도 한반도 비핵화 문구가 빠지고,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안정·번영이 우리의 공동 이익이자 공동 책임”이라는 문구가 들어갔을 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3국 공통의 핵심 이익인 역내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결의를 충실히 이행하면서 북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지만 중국 리창(李强) 총리는 비핵화에 대한 언급 없이 “중국은 시종일관 한반도 평화와 안정,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추진한다.”는 원론만 되풀이했다.
대북제재를 무력화 하는 ‘악역’은 러시아가 맡고 있는 모양새다. 러시아는 전문가 패널 임기연장 거부에 이어 북한 노동자 해외파견 제재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지난 6월 5일(현지시간) 푸틴 대통령은 외신 기자 간담회에서 “조선은 우리의 이웃이며, 누군가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관계를 발전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조선 출신 해외 노동자가) 어떤 위협을 가하고 누구에게 위협을 가하는가?”라고 의문을 표시하며 북한의 해외 노동자 파견에 대한 “제재는 잘못됐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을 접견한 자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9월 수뇌회담에서 이룩된 합의들을 충실히 실현하여 안정적이며 미래지향적인 새 시대 조러 관계의 백년대계를 구축”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동북아에서 한미일의 동맹 강화에 맞서 북중러의 밀착이 다방면으로 확대되면서 한반도 비핵화 문제가 실종되고, 촘촘했던 대북제재에도 구명이 뚫리기 시작한 것이다.

‘두만강 하류 통항’ 꺼내든 중국

둘째는 북중러 사이에 대미 공조가 강화되는 국면에서 중국의 ‘경제 실리 챙기기’가 표면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우선 우크라이나와 전쟁(사실상 미국과 나토를 상대로 하는 전쟁)을 치르고 있는 러시아가 ‘우군’을 필요로 하는 정세를 활용해 경제적 실리를 최대한 챙기려 하고 있다. ‘시베리아의 힘 2’ 가스관 계약을 미루며 러시아 국내 소비가 수준의 저렴한 가격과 제공 가스량의 일부만 구매할 수 있는 옵션을 요구한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더 주목할 측면은 중국의 이러한 경제 실리 챙기기가 남과 북의 경제협력, 더 나아가 통일 이후의 경제청사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영역까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이번 공동성명에 “중국 선박이 두만강 하류를 통해 바다로 나가 항해하는 사안에 관해 조선과 건설적 대화를 진행하는 것을 지지한다.”는 내용을 담는데 성공했다.
중국은 현재 러시아와 북한이 공동 관리하는 두만강 하류 약 20km 구간으로 인해 동북지역에서 동해로 나가는 항로가 막혀 있다. 중국은 스탈린시대 때 막힌 두만강을 거쳐 동해로 진출하는 물류망을 확보하기 위해 과거 러시아, 북한과 접촉을 했지만 두 나라의 반대, 특히 북한 측의 강력한 반대로 성공하지 못했다. 1990년대 초 하산-훈춘-나진을 잇는 두만강개발계획이 추진되자 중국은 다시 이 제안을 내놓았지만 역시 러시아와 북한의 반대로 무산됐다. 그러자 중국이 대안으로 추진한 것이 차항출해(借港出海) 전략이다. 러시아 연해주와 북한의 항구를 임차해 동해로 나간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중국은 러시아와 협력해 흑룡강성 하얼빈-러시아 나홋카항 잇는 물류망과 길림성 창춘-러시아 자루비노항 물류망을 개설했고, 북한과 협력해 도문·훈춘-나진항 물류망을 확보했다. 중국은 또한 훈춘-하산-나진을 잇는 철도망을 통해 훈춘-나진항-중국 남방지역으로 이어지는 물류망도 만들었다. 그러나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 국제사회의 대북경제제재 때문에 중국의 차항출해 전략은 안정적인 물류망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은 두만강을 직접 통과하는 물류망 구축이라는 ‘실리’를 확보하려고 다시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이번 공동성명을 통해 일단 러시아의 지지를 얻어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 측이 이에 동의했거나 상호 논의에 진전이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북한은 과거 일관되게 두만강 하류를 중국이 통항하는 것에 반대해 왔다. 중국이 차항출해 전략을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중국이 북한과 이 문제를 깊이 있게 논의를 진행시키면서 러시아의 동의를 이끌어냈다기보다 러시아의 지지를 등에 업고 북한 측을 압박하려는 의도가 더 큰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러시아, 중국과 삼각 협력체제를 구축하려고 하는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한 듯하다.

[그림 2] 중국 훈춘시 방천 전망대에서 본 두만강하류와 하산-나진을 잇는 철교 모습 (사진출처: 필자가 직접 촬영)

안보와 경제를 아우르는 새로운 구상 필요

북한은 두만강 하류 항행을 허가할 경우 중국에 상당한 대가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신의주와 평양을 잇는 고속철도 건설, 북한 노동자의 안정적인 파견, 북한 광물의 중국 수출 등 현재 북중 간 협상테이블에 올라 있는 여러 현안들을 뛰어넘는 요구가 나올 수도 있다. 모두 대북제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안들이다.
특히 두만강 하류 통항 문제는 단순히 이 사안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30여 년 전부터 제기된 두만강지역 국제개발구상과 연계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의 두만강 하류 통항을 위해서는 러시아와 북한의 승인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준설 등 여러 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지만 훈춘-자루비노-나진을 잇는 유람선이 시범적으로 운행되고, 물자들의 이동이 시작되면 두만강지역 개발은 급물살을 탈 수 있다.
북한도 농민 파견문제가 해결되면 연해주지역에 밀 재배를 중심으로 ‘해외영농’을 추진하겠다는 구상이다. 과거 러시아의 땅, 한국의 자본, 북한의 노동력 결합으로 추진하려던 구상에서 한국이 배제되고 중국이 들어오게 되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블라디보스토크-하산-나진-원산-부산을 잇는 환동해벨트 개발이나 시베리아 횡단철도와의 철도연결, 가스관 연결 등 우리 정부가 그동안 구상해 온 사업들도 전망이 불투명해 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 남북관계의 단절이 장기적 국면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예 원점에서 모든 동북아 경제구상을 다시 짜야할 수도 있다. 미국에 대해 공동전선을 표방하면서 틈새를 활용해 경제적 실리를 챙기고 있는 중국, 우크라이나전쟁에 대한 지원 확보를 위해 북한에 에너지와 식량을 지원하며 대북제재 무력화에 앞장서는 러시아, 러시아의 지지를 업고 중국의 경제적 지원을 이끌어내려는 북한, 3국의 속내는 다르지만 북중러의 교류와 협력 강화는 새로운 도전으로 다가오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이 동북아 물류망 건설 사업의 판도를 바꾸고 있고, 북한이 ‘적대적인 두 개의 국가론’을 내세우며 남북관계가 장기적으로 단절될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북중러는 ‘동상이몽’이긴 하지만 정치·군사적 밀착 속에서 상호간 더 많은 실리 확보를 위해 경쟁하고 있다. 특히 30여 년 전 사회주의체제 붕괴이후 국제적으로 고립무원 상태에 있던 북한은 핵탄두와 미사일을 손에 쥐고, 북·중·러 결속을 배경으로 군사, 외교, 경제적 공세를 펴고 있는 것이 지금의 한반도를 둘러싼 불편한 진실이다. 우리는 그 ‘불편한 진실’에 맞춰 안보뿐만 아니라 경제적 대비책을 새롭게 마련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