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논단

남북관계의 현재와 한반도 인프라 협력 전망

임을출 교수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세계적인 주목을 끌었던 10월 10일 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서 “하루빨리 이 보건 위기가 극복되고 북과 남이 다시 두 손을 마주잡는 날이 찾아오길 기원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코로나19와 싸우고 있는 전세계인에게 위로를 전하고 건강을 기원한다면서 “사랑하는 남녘 동포들에게도 따뜻한 이 마음을 보낸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면 남북 대화를 복원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은 코로나19 방역 목적으로 국경을 봉쇄한 가운데 대외 접촉을 최소화하고 있다. 남북관계를 복원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힌 점에서 반전의 기회가 올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의 발언이 갖는 막강한 비중을 고려하면 빈 말은 아닌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지난 남북관계 역사를 되돌아보면 비관도 낙관도 경계해야 할 듯하다. 롤러코스트와 같은 남북 관계를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지속가능한 남북관계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가 여전히 최대 화두다.

불미스런
역사의 반복

한반도 평화체제는 남북한을 비롯한 관련국 상호간에 정치적 ·군사적 신뢰가 구축되어 법적 ·제도적 및 실질적으로 한반도에 공고한 평화가 보장되어 있는 상태를 뜻한다. 2018년은 남북한이 평화체제의 초석을 놓기 위해 달려온 한 해였다. 평화체제 구축의 가장 큰 걸림돌은 북한 핵문제이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남북-북미간의 선순환 관계를 형성하려 했으나 안타깝게도 지금은 답보상태를 이어가고 있다. 비핵화를 실현하기까지 걸리는 시간 등을 고려해 우선은 남북 간 신뢰수준을 높이는 것이 과제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호응하지 않음에 따라 안타까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남북한의 신뢰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장치는 최고지도자 간의 회담을 정례화하는 것이다. 지도자 간의 개인적, 인간적 신뢰를 돈독히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북한체제의 특성상 최고 지고지도자와의 신뢰는 정치군사적 현안을 논의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실효성을 보장할 수 있는 최선의 장치라 할 수 있다. 과거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10.4 선언 등 최고 지도자 수준의 합의들이 도출되었지만 지속성과 연속성을 갖지 못했다.

그 이유들은 여러 가지 있겠지만 남북 간 상호존중과 신뢰의 부족과 정권교체 변수 등이 합의 불이행의 주요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2018년에 성사된 4.27 판문점정상회담과 9.10 평양정상회담은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당시 두 정상이 나눈 대화 내용을 통해서 합의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 않게 중요한 합의이행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 위원장은 2018년 4월 27일 오전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진행된 정상회담에서 “속도”를 유독 강조했다. 11년 만에 만개한 “한반도의 봄”을 남과 북의 공조로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을의 결실을 거두자는 포괄적 다짐이자, 1·2차 정상회담이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의 임기 중후반 열려 합의 이행에 어려움을 겪거나 실패한 선례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현실적 필요’에 따른 것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과거에는 정권 중간이나 말에 늦게 합의가 이뤄져 정권이 바뀌면 실천이 이뤄지지 않았다”, “우리는 결코 뒤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비장감을 나타낸 바 있으며, 김 위원장 역시 “이제 마음 단단히 굳게 먹고 다시 원점으로 오는 일이 없어야겠다”, “이 합의가 역대 북남 합의서처럼 사장화된 불미스런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자”며 결연함을 드러냈다. 한마디로 두 정상이 ‘역진 불가능한 합의 이행’을 강조한 것이다. 이처럼 남북 간의 공고한 신뢰관계는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을 촉진시키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하지만 현실은 이 두 정상이 우려한 바대로 불미스런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

9.19
평양공동선언의
남북관계사적
의의

9.19 평양공동선언은 65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한반도 평화 및 공동 번영의 길로 나아가는 데 이정표를 세웠다고 평가할 만하다. 이 선언들에는 무엇보다 남북관계를 보다 적극적으로 개선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남북한 최고지도자의 확고한 의지가 명문화되었다. 선언에는 완전한 한반도비핵화를 비롯해 군사적 긴장완화를 포함한 항구적 평화정착 문제, 획기적 남북 관계 발전을 위한 교류협력사업 분야 등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많은 내용이 담겼다. 또한 애초 예상과는 달리 비핵화와 평화정착 부분에서도 진전이 이뤄져 향후 대북제재가 완화된다면 폭넓은 남북교류협력이 재개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남과 북은 한반도 전 지역에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모든 위험을 없애기로 합의했다. 또한 한반도를 항구적 평화 지대로 만들어감으로써 우리는 이제 우리의 삶을 정상으로 돌려놓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만들었다. 특히 남북 간 직접적으로 비핵화 논의를 한 점은 이전의 남북관계와 질적으로 차이가 나는 부분이었다. 북한은 이전에 핵문제는 철저히 미국과 협의할 문제이지, 우리측과 논의할 의제가 아니라고 못박았다. 그러나 이제 비핵화 이슈는 남북한 사이에도 긴밀하게 논의하고 있는 핵심 의제가 되었다. 북핵 문제는 북미 간 문제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지만, 남북정상회담 등을 통해 비핵화 이슈는 자연스럽게 다뤄지고 있는 것이다. 9월 평양 공동선언에는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가 명시되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평양 5.1경기장에서 “우리 두 정상은 한반도에서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음을 8천만 우리 겨레와 전 세계에 엄숙히 천명했다”고 연설해 15만 평양 시민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경제, 사회문화, 인도적 지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민간 교류협력사업도 합의되었다. 이는 지속가능한 남북관계 발전을 추동 하는 중요한 동력이다.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구축이 상호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다방면에 걸친 남북관계 개선과 병행해서 추진해야 한다. 평화체제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남북 간 정치군사적 신뢰와 함께 경제협력과 사회문화적 교류가 동시에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비정치적인 민간교류가 정치 이념의 빗장을 풀었고 양측 국민들의 닫힌 마음을 열어 나갈 수 있다. 그래서 9.19 평양공동선언 이후 국제사회의 제재 틀 내에서 남북한은 철도도로연결 및 현대화사업, 삼림협력, 보건의료 협력, 체육교류, 예술단 교환공연, 이산가족상봉 둥 다방면의 교류협력이 추진되었다. 남과 북은 당국간 협의를 긴밀히 하고 민간교류와 협력을 원만히 보장하기 위하여 쌍방 당국자가 상주하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개성지역에 설치했다. 연락사무소는 분야별 대화 체계의 전면 복원과 함께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해 상시 협의의 틀을 마련하고, 지속가능한 남북 관계 발전에 꼭 필요한 장치였다.

평양공동선언과 함께 남북한은 ‘9.19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를 통해 모든 공간에서의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 전면중지,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조성 대책 강구,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 평화수역 조성 및 안전한 어로 활동 보장, 상호 군사적 신뢰 구축을 위한 조치를 강구하는데 합의했다. 2018년 10월부터 철원군 화살머리고지에서 지뢰와 폭발물 제거작업이 진행되었고, 11월 22일에는 철원 비무장지대(DMZ) 내 전술 도로가 연결됐다. DMZ 지역 내에서 남북 도로가 연결된 것은 1953년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후 65년 만에 처음이었다. 그해 12월 9일에는 모두 35일 동안 660km의 한강하구에 대한 공동조사도 마쳤다. 2018년 연말 기준으로‘군사분야 합의서’에 명시된 7개 주요 합의 사안 중 5개가 완료 됐거나 진행 중이었다. 당시 남북한은 4ㆍ27 판문점선언, 9.19 평양공동선언의 차질 없는 이행이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 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믿었다. 북한이 비핵화 이행방안을 더 구체화하고 한국과 미국은 이에 상응하는 포괄적 조치를 신속하게 추진한다면 속도는 더 빨라질 수 있었다. 특히 국제사회의 제재 유지로 인해 남북 간 교류협력이 제한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남북한의 자율적 의지만으로도 추진하기가 용이했던 남북 간 군사적 합의 이행이 평화체제 이행을 견인 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남북관계와
인프라 건설
협력 전망

하지만 2019년 2월 말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정상회담 회담 결렬 이후 9.19 평양공동선언 합의 이행은 거의 중단 되었고, 한반도평화프로세스는 사실상 멈추었다. 북한 당국은 하노이 회담 실패의 책임을 사실상 우리에게도 물었고, 남측 정부를 불신하게 된 북한은 대놓고 문재인 정부를 조롱하기까지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8.15경축사에 대해 북한 조국평화통일 위원회(조평통)는 대변인 담화를 통해 “광복절과는 인연이 없는 망발을 늘어놓은 것”이라고 비난하며 “우리는 남조선 당국자들과 더이상 할 말도 없으며 다시 마주 앉을 생각도 없다”고 공개적으로 선을 그었다.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할 노릇”이라는 조롱 까지 덧붙였다. 북미협상 결렬의 여파로 한미합동 군사연습이 재개되고 대북제재도 더욱 강화되는 국면에서 문재인 정부는 상황을 돌파할 정치력과 외교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2020년 들어와서는 코로나19 펜데믹이라는 돌발변수가 등장하면서 남북 관계를 더욱 얼어붙게 만들었다. 설상가상으로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가 남북간 모든 연락채널의 차단, 초유의 개성 공동 연락사무소 폭파(6.16)로 이어졌다. 김정은 위원장이 대남 군사행동계획을 보류하면서 간신히 ‘숨 고르기’ 국면에 들어섰지만 여전히 불안정한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9월 22일 연평도 실종공무원 피격사건이 벌어졌다. 가뜩이나 경색된 남북관계를 수렁으로 밀어 넣는 돌발 변수가 등장한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2월 북미정상회담 이후 경색된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9월 23일 제75차 유엔(UN)총회 기조연설에서 북측에 유화 메시지로 ‘종전선언’과 ‘동북아시아 방역·보건 협력체’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포괄적 안보 시대’에 ‘코로나 위기’ 앞에서 “이웃 나라의 안전이 자국의 안전과 직결되어 있다” 는 인식에 의거하여 “북한을 포함해 중국과 일본, 몽골, 한국이 함께 참여하는 ‘동북아시아 방역·보건 협력체’” 구축을 제안한 것이다. 정부는 올해 초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기 시작한 올해 초부터 보건·방역 협력을 강조했고, 올해 7~8월에는 수해·태풍 피해 등과 관련 남북협력의 의사를 내보이기도 했다. 정부는 제75주년 광복절 8·15 경축식, 지난 9·19 평양공동선언 2주년을 계기로 꾸준히 북측에 호응을 촉구했다. 이러한 정부의 노력은 꺼져가는 남북관계 불씨를 살려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이에 화답하지 않았다.

김정은 위원장은 10.10 당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 연설에서 대남 메시지를 짧지만 분명하게 제시하였다. 김 위원장은 코로나19 변수가 남북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분명하나, 아직은 남북관계를 복원할 시기가 아니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지난 9월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 내용과 유사한 내용의 위로와 기원을 보내면서 남북관계를 적절하게 관리 하려는 의도를 보여주었다. 대선 결과, 그 이후의 북미관계 등을 지켜보면서 적절한 시기가 오면 남북관계를 복원하겠다는 의지를 반복해서 보여주고 있다. 김 위원장의 발언이 갖는 비중을 고려하면 빈 말은 아닌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은 큰 틀에서 미국의 바이든 신행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를 지켜보고, 또한 내년 1월에 개최되는 제8차 당대회 이후 대미 대화, 대남 대화 재개 여부와 시점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코로나19의 통제 여부가 여전히 남북관계 복원의 중요한 조건이 될 것이다. 남북관계 진전과 변화는 그 여건과 조건이 만들어져야 가능하다. 특히 북한 입장에서는 남북관계의 실익이 명확히 존재해야 한다. 북한은 대남 관계를 북미 관계와 연계해 수위를 조절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9.19 평양공동선언 등 남북정상 간 합의를 변함 없이 이행하고, 당장 남북대화 복원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남북 간 합의만 하고 이행을 하지 못하는 불미스러운 과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남북관계와 대미관계에서의 자율성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야 북한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동시에 남북교류협력 재개를 위한 만반의 준비는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향후 남북교류협력이 재개되는 환경이 조성될 경우 인프라 협력은 철도도로연결 및 현대화에서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개성공단 사업과 금강산 관광사업이 재개될 경우에도 인프라 분야에서의 협력수요는 크게 증가될 것으로 예측된다. 남북한은 이미 정상간 합의한 4.27 판문점선언과 9.19 평양공동선언이 있기 때문에 이 두 선언에 포함된 인프라 관련 협력사업만 이행해도 그 규모는 적지 않은 상황이다. 향후 국제사회의 제재 완화 수준에 따라 인프라협력의 범위와 속도가 결정될 것이다. 거친 파도는 사공을 유능하게 만든다는 말이 있다. 거친 환경, 가혹한 환경에서 새로운 인류문명이 생겨났듯이 우리는 현재의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급변하고 있는 대내외 여건은 남북간 인프라건설협력 구상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남북관계가 급반전되어도 방역 조치의 일환인 북한의 국경 봉쇄가 장기화되면 북한과의 일반적인 형태의 인적교류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지속적으로 논의되어 왔던 남북한 철도도로연결 및 현대화의 가능성도 급격하게 얼어붙은 남북관계로 인해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된다. 이러한 정치적, 비정치적 환경 변화 속에서 남북한 인프라협력을 실현하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창의적인 접근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