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Description
이슈 논단
북한의 도시 변화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
김정은의 건설정치
2015년 2월 15일, 노동신문은 김정은 위원장의 현지지도 사진을 여러 장 게재했다. 드론 촬영으로 김 위원장 전용비행기 참매 1호가 상공을 비행하는 장면, 미래과학자거리 건설 현장 부감(high angle shot) 장면, 건설 현장을 창밖으로 내려다보는 김 위원장의 사진이 실렸다. 현지지도 역사상 최초로 ‘비행 현지지도’ 장면이 등장한 것이다.
[그림 1] 미래과학자거리 건설현장과 김정은 위원장의 최초 비행 현지지도 (2015년 2월 15일, 노동신문)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현지지도 사진이 주로 지도자 중심의 절제된 이미지였다면, 김정은 위원장은 다양한 앵글 사용은 물론 건설 현장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지도자, 건설 현장과 도시를 파노라마식, 어안렌즈 프레임에 가득 채워 보여 주는 방식은 이후 김정은 건설 현장 방문 사진의 대부분에서 발견된다. 아래 사진은 2017년 1월 여명거리 건설 현장을 방문한 사진들인데, 부감과 로우 앵글(low angle), 길게 사선 찍기, 어안렌즈 샷 등 건설 현장을 스펙터클하게 연출하는 모든 기법을 동원했다. 이들 사진의 앵글들은 도시를 시각적으로 경관화하는 통치자의 관점을 보여준다.
[그림 2] 김정은 위원장의 여명거리 현지지도 (2017년 1월 26일, 노동신문)
문명화, 도시건설, 모빌리티
김 위원장의 도시 사랑은 각별하다. 집권 이후 대내 통치코드는 ‘문명화’, ‘도시건설’, ‘모빌리티’로 꼽을 수 있다. 2012년 처음 등장한 ‘사회주의문명화’는 김정은 정권의 ‘건설정치’를 상징하는 키워드다. 건설은 곧 “국력과 문명의 높이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척도”(2016년 신년사)다. 북한은 김정은 시대를 ‘건설의 대번영기, 새로운 문명개화기’로 규정했다. 사회주의문명화 담론과 건설정치는 정치적 의도가 어떻든 시장화를 촉진하며 도시의 모빌리티를 한층 새로운 양상으로 변화시켰다. 시장화와 상업망 개편은 도시 내·외부를 연결하는 이동성–인간·상품·화폐·정보·기술의 네트워크와 흐름–의 폭발적 증가를 가져왔다. 도시는 하나의 시장시스템으로 진화했다.
정치적 메시지로서 도시건설
집권 이후 나타난 김 위원장의 건설현장 현지지도 사진들은 도시질서를 창조하는 지도자 이미지의 구축과정이기도 하다. 북한에서 도시건설 기획은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평양시 대규모 살림집 건설은 김일성 생일(60, 70, 80회) 및 당 창건 정주년에 맞춰 기획되었다. 또한 사회주의 개혁·개방, 서울올림픽 등 정세 변화에 대응한 과시적 건설도 있었다. 1992년 통일거리 조성을 마지막으로 평양시 대규모 건설사업은 사실상 중단되었다. 경제난의 여파였다. 2010년 시작된 ‘평양 10만호 건설’ 사업은 18년 만에 대규모 건설 재개와 김정은 위원장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였다. 2012년 김일성 탄생 100주년에 맞춰 추진된 이 사업은 이후 전국적인 ‘건설 붐’을 만들어냈다. 억눌려 있던 주택 욕구를 폭발시킨 것이다. 사회주의문명국론은 이런 건설 붐을 합리화하고 촉진했다. 이후 건설은 고강도 대북제재의 ‘무용론’과 체제의 건재함을 알리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가령 2017년 4월에 북한 당국은 외신기자들에게 ‘빅 이벤트’가 4월 13일 있을 예정이라고 알리고 취재 참석을 요청했다. 외신기자들은 빅 이벤트를 보기 위해 대거 행사장에 참석했고 김정은이 외신 언론 앞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김정은이 등장한 행사장은 바로 여명거리 완공식장이었다. 성대히 치러진 이날 완공식을 노동신문은 미국이 아무리 강한 제재를 가해도 우리는 끄떡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기획되었다고 밝혔다. 소위 ‘대북제재 무용론’을 대외적으로 알리기 위해, 그리고 미국의 압박에 굴하지 않는 지도자의 강한 의지를 국내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평양시 건설 프로젝트가 활용된 것이다. 고강도 대북제재가 이뤄지는 국면에서도 대규모 건설들이 이뤄진 것은 이런 정치적 계산 속에서 가능했다.
[표 1] 평양시 주요 살림집 및 거리 조성, 1970-2017년
2021년 제8차 당대회를 기점으로 착수된 평양 5만 세대 건설 역시 코로나19, 대북제재, 자연재해 등 소위 ‘3중고’ 속에서도 인민생활 향상에 노력한다는 정치적 리더십을 보여주는 차원에서 강행된 측면이 있어 보인다. 1950년대 이후, 김일성 생일을 기점으로 대규모로 조성된 살림집들이 노후화되면서 살림집 건설 수요가 증가한 부분, 현대식 도시 건축 양식을 통해 도시미화 등 다양한 배경적 요인이 작용한 부분도 있다.
[그림 3] 북한의 살림집 준공식 모습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세계적 추세와 도시 스펙터클의 창출
김 위원장은 집권 이후 유독 ‘세계적 추세’를 강조했다. 세계적인 도시들이 보여주는 세련됨과 현대화된 양식을 모방하고 따라가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1990년대 이후 20여 년, 낙후한 국가의 이미지를 일신하고 싶다는 욕구, 발전 및 개방의 욕구가 투영된 담론이다. 평양국제비행장 건설, 여러 대규모 거리 조성, 스카이라인 기획, 대동강 수변 경관 조성, 4D 영화관(입체율동영화관), 다양한 관광 상품 개발, 야경(불장식) 강조 등이다. ‘시각적 경험’에 기초하는 ‘상품’으로서 도시와 닿아 있다.
세련된 도시 이미지는 평양 시민들의 일상생활과 소비생활을 통해서도 구현된다. 최근 평양을 방문한 대부분의 관찰자들은 평양의 활기, 세련됨, 화려함 등을 공통적으로 얘기한다. 도시 경관화는 평양의 야경에서 절정을 이룬다. 도시 조명효과를 통해 야경을 화려하게 연출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불장식을 잘 할 것에 대한 강령적 과업’을 내리는가 하면, 내각 산하에 ‘직관불장식지도국’ 신설, 지도국 산하에 ‘선경불장식연구소’를 만들어 불장식 효과를 극대화하도록 했다. ‘사회주의 선경’으로서 야경 효과는 주민들의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높이고 긍지를 높이는 차원이기도 하다. 선경은 아름다운 경관, 직관은 말 그대로 감각적으로 인지되는 사물에 대한 정보인데, 도시를 일종의 직관적인 경관 차원에서 보여주려는 의도다.
건설 스토리 창출을 통한 주민 결속
대규모 거리 및 살림집 건설은 극적인 건설 드라마로 재구성된다. 당 창건일이나 김일성 탄생일에 완공 목표를 설정하는 것 자체가 매우 극적인 요소를 갖는다. 촉박한 공기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힘을 합쳐 일정에 맞춰 목표를 달성하게 된다면 이 기념일의 의미와 상징성을 배가시키고 고조시키기 때문이다. 전 국가적, 전 사회적 관심 이슈로 마치 한편의 건설 드라마를 극적으로 써 가듯이 연일 북한 모든 매체들이 건설 현장 소식과 미담을 전하는 데 몰두한다. 건설 중간에 김정은이 수시로 방문을 한 사진들이 대거 공개되면서 극적인 효과를 고조시킨다.
건설 경기의 상승과 하락
북한의 김정은은 공식 권력 승계 이전인 2010년부터 대대적인 살림집 건설과 도시미화사업을 시작하였다. 2012년 김일성 생일 100주년을 기념하려는 정치적 기획의 의미가 컸다. 대규모 아파트 건설이 1992년 경제난으로 중단된 이후 사실상 18년 만에 재개된 것이다. 평양 일대 거리를 중심으로 조성된 새로운 아파트 및 빌딩 건설은 전국적으로 ‘건설 붐’, ‘부동산 열풍’으로 이어졌다. 국가 기획, 민간 자본, 지방권력이 결합된 3자 건설동맹이 형성되고, 평양을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아파트가 대규모로 조성되면서 자재시장, 인력시장, 시멘트시장, 철근시장 등이 확장되면서 건설경기가 경제 전반을 견인하는 상황이 됐다. 김정은의 도시개발과 대규모 건설 사업은 최고통치자의 치적 과시, 주민들의 주택 수요, 지방권력의 이해관계, 민간자본의 수익이 결합된 하나의 새로운 발전모델이 됐다.
도시개발 욕구 속 경제발전의 미래
김 위원장이 지난 주 삼지연, 원산 방문을 하며 4개월여 만에 현지지도를 재개했다. 역점을 뒀던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완공시기를 10월 당 창건일에서 6개월 연장했다. 두 번째 연장이다. 대북제재로 그만큼 내부 사정이 어렵고 절박하단 뜻이다. 김 위원장 집권 이후 도시개발 프로젝트가 ‘총계획도’ 형태로 계속 공개되고 있다. 이미 알려진 것만 해도 원산, 삼지연, 신의주, 청진, 혜산, 양덕군 등이다. 도시별 총계획도를 들여다보면, 김 위원장이 가고자 하는 경제발전의 전략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고 그해 4월부터 미사일 실험 활동을 재개하면서 북한의 대외 기조와 내부 건설 동향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평양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거리 조성이나 살림집 건설을 평양 외곽이나 지방도시 건설로 이동시킨 것이다. 대미 장기전과 어려운 경제 형편 속에서 자칫 평양 중심의 호화로운 건설이 위화감을 불러올 것을 염려한 탓도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런데 내용을 들여다보면, 중앙 재정 지원은 없는 지방 도시 자체 건설에 의존하는 부분이 커 보인다. 평양과 농촌 등의 대규모 살림집 건설은 수도방어군단을 비롯한 주요 부대들, 지방건설은 지방 주둔 부대가 동원돼 양적으로 일정한 성과를 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생산 및 건설 관련 가용 노동력이 부족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규모 살림집 건설 동원, 군수생산 투입, 인민경제 투여 노동력 등 생산 가능인구의 심각한 제약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 관건은 핵무기 고도화만큼 북중 교역이 얼마나 빨리 정상화될 수 있느냐이다. 대부분의 지방도시들은 북중교역을 통한 물자의 수출입을 통해 생존해 가고 있다. 유입된 물자는 도시시장을 통해 전국의 소비 유통망으로 흘러간다. 시장으로부터 장세, 보관료, 창고료, 각종 시장 관련 세금을 받고 이것을 지방 재정에 충당하는 비중이 늘어났다. 지방도시의 공원이나 도로, 각종 건설이 이렇게 시장활동의 세원을 통해 확보된다. 건설시장 역시 북중 교역을 통해 들어오는 자재를 통해 돌아간다.
시장화와 도시의 변화
우선 북한의 시장화는 도시경제 하부구조에 일정한 영향을 미쳐왔다. 교통·운수분야의 경우 시장의 생산·유통 동선을 따라 활성화되었고 새롭게 정비되고 신설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가령 시장이 활성화된 도시 대부분에서 기존 열차역의 인프라가 리모델링 또는 증설되고 역과 시장을 연결하는 운송시스템이 활성화되었다. 시장과의 연결성이 강화되는 시스템 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적극적으로 해석한다면, 도시 기본 인프라가 시장 움직임과 수요에 부응해 재구축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밖에 에너지부문 역시 시장 활동에 필요한 전력 공급을 민간 차원에서 자구적으로 구축하는 것은 물론, 국가 차원에서 기업 생산을 보장하기 위해 전력 공급을 정책 최우선에 두고 있다. 국가의 기업 전력공급은 기업의 생산이 결국 시장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시장 수요에 부응한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통신 역시 시장화의 중요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다. 일반 상점 소액 거래의 전자결재 시스템, 핸드폰을 통한 상거래 및 시장 정보 공유가 두드러진다. 통신은 시장 네트워크와 로지스틱스 작동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둘째, 기업과 시장의 생산·유통·판매·소비 네트워크와 로지스틱스는 점차 연결망과 확장 영역이 다양화되는 한편 상호 연계성이 강화된 측면이 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기업과 시장 사이의 네트워크 및 로지스틱스의 연결성이 강해져 둘 사이에 구분이 어렵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기업의 네트워크와 로지스틱스는 시장의 네트워크와 로지스틱스와 중첩되고 서로 연계돼 둘 사이에 유의미한 구분이 불가능할 정도로 사실상 하나의 네트워크 안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기존 국가 중심의 계획 지령에 의한 기업의 생산과 분배 개념이 현실에서 사실상 형해화되고 기업의 생산은 생산계획부터 시장 유통과 판매를 위해 계획화되고 시장의 수요와 유통을 따라 이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셋째, 도시 하부구조와 생산·소비의 로지스틱스 변화가 도시 공간구조에 일정한 변화를 가져온 것이 확인되었다. 시장 동선이 다선화되고 중층화되면서 시장 입지에 따른 공간 변화가 두드러진다. 가령 공식적인 종합시장의 위치가 과거 도심 외곽이나 산기슭 등지에서 도심 한가운데로 이동하는 현상이 발견된다. 또한 시장 입지에 따라 도심 전체의 주택가격이 형성되고 이 가격에 따라 특정 지역의 인프라와 리모델링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현상이 전국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평양을 제외한 일반 중대형 도시에서는 기존 공업지구의 상업지구화, 주거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이런 일련의 공간 변화는 전체적으로 기존 도시 성격이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가령 기존 전형적인 중화학공업 도시가 점차 경공업과 유통 중심의 시장도시로 변모하는 경우가 발견되며, 국가의 도시개발 방향도 관광, 물류, IT, 경공업 중심으로 재편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