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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향∙정보
궁금한 북한의 이모저모
겉과 속이 다른 북한의 행보,
겉으론 ‘임전태세’ 강조하며 외교전과 경제건설에 집중
머니투데이미디어 평화경제연구소
북한의 ‘말 폭탄’이 아닌 실제 정책과 행보에 주목해야
북한은 지난해 말 조선노동당 당중앙위원회 제8기 9차전원회의와 올해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유사시 전쟁’을 언급했다. 북한은 남북 관계를 통일 지향 특수관계에서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새롭게 규정하고, 전쟁이 일어날 경우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 평정, 수복하고 공화국에 편입”시키겠다고 위협했다. 그러면서 남북관계의 근본적 전환을 선언했다. 한국을 화해와 통일의 상대이자 하나의 민족이 아니라 철저한 타국으로,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규정한 것이다.
이를 두고 국내외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전쟁을 결심했고, ‘대남 전쟁 시나리오’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전면전은 어렵지만 국지전 도발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그러나 북한의 발언은 문맥상 전쟁보다는 ‘전쟁 억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침략과 간섭이 없는 평온하고 안정된 환경 속에서 자주적 발전의 길”이 시종일관된 전략적 노선이라고 표방하고 있다. 자신들을 겨냥한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 한미군사연습 확대, 체제와 정권 종말을 추구하는 대북적대시 정책 등이 자위적 국방력을 강화하고 압도적인 핵전쟁 억제력을 제고할 수밖에 없는 당위성을 제공해 주고 있다고 주장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올해 시정연설에서 “전쟁이라는 선택을 할 그 어떤 리유도 없으며 따라서 일방적으로 결행할 의도도 없지만 일단 전쟁이 우리 앞의 현실로 다가온다면 절대로 피하는데 노력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쟁을 피하지는 않겠지만 자신들이 먼저 전면전에 나서지는 않겠다고 선을 그은 셈이다.
실제로 김정은 위원장의 시정연설에서 가장 많은 내용을 차지하고, 강조된 대목은 경제건설이었다. 그는 수도 평양과 지방의 차이, 지역 간 불균형을 극복하기 위해 장기 정책으로 ‘지방발전 20×10 정책’을 제시하며 경제건설과 인민생활 개선에 매진하겠다는 구상을 상세히 설명했다.
북한은 2021년 조선노동당 제8차당대회를 통해 현 시기를 ‘사회주의건설의 전면적 발전기’라고 규정하고, 이 시기에 달성해야 할 3대 핵심과제로 ① 정치·국방 선차(우선), 경제·문화 동시발전, ② 인민경제의 균형 성장, ③ 지역 간 균형 발전을 제시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당중앙위원회 제8기 9차전원회의와 시정연설을 통해 제시된 북한의 노선과 정책은 8차당대회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남북관계의 근본적 전환 선언은 또 다른 차원의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전쟁과 경제건설은 양립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북한의 정확한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말 폭탄’이 아닌 실제적인 행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림 1]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회의 시정연설에서 제시된 북한의 노선과 정책
북한의 속내와 의도를 보여주는 행보들
1월 시정연설 이후 김정은 위원장은 군사부문의 현지지도에 집중했다. 특히 3월 14일 종료된 한미 연합연습 기간에 △서부지구 중요작전 훈련기지 방문, △대연합부대 포사격 훈련 지도, △탱크병 대연합부대 대항훈련 참관, △항공륙전병부대(공수부대) 강하훈련 지도, △600㎜ 초대형 방사포 일제사격 훈련 지도 등 총 5차례 군사 행보를 보였다.
이러한 북한의 대응은 돌발행동이 아니라 시정연설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시정연설에서 “어떤 형태의 도발적 행위도 압도적인 대응으로 철저히, 무자비하게 제압 분쇄할 수 있게 확신성 있는 만반의 대비태세”를 갖춰나가겠다고 발언했다. 그는 항공륙전병부대 강하훈련을 지도하며 “인민군대의 기본임무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전쟁 준비” 라고 강조했지만 도발보다는 대비태세에 초점을 맞췄다. 그의 연이은 군사 분야 현지지도는 한미 연합연습 ‘자유의 방패’(FS·프리덤실드)에 대한 맞대응이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또한 북한은 중장거리 극초음속미사일용 고체연료 엔진 시험, 군사정찰위성 발사 준비 등의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어느 정도는 예상된 수순이다.
이러한 군사적 행보보다 더 중요한 측면은 북한이 외교와 경제 분야에서 보여주고 있는 행보라 할 수 있다.
첫째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닫혀 있던 외교적 공간의 복원이다. 북한은 지난 1월 비동맹운동 정상회의 참석차 정부대표단이 아프리카 우간다를 방문한 데 이어 3월까지 총 10차례 대표단을 파견했다. 파견한 국가도 러시아와 중국 등 전통적인 우방국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케냐, 브라질, 몽골 등으로 확대됐으며 대표단의 성격도 농업기술, 체육, 환경, 청년, 직업연맹 등으로 다양하다. 3월 말에는 김성남 당 국제부장을 대표로 하는 노동당 대표단도 중국, 베트남, 라오스를 순방했다. 라오스는 올해 아세안 의장국으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등 아세안 외교·안보 관련 각종 회의를 준비 중이라는 점에서 북한이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과 외교활동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또한 북한은 스웨덴과 독일의 외교관 방문을 허용했고, 스위스·영국·폴란드 또한 북한 당국과 방북 계획을 조율하고 있다. 북한이 코로나19 기간에 철수했던 유럽 국가들의 평양 공관 재가동과 외교활동을 수용한 것이다.
이처럼 북한이 대외활동을 넓히고 있는 데는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조치 완화 후 국경을 점차 개방하고 있는 것과 함께 남북관계를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한 것과도 관련이 있다. 북한이 본격적으로 한국과의 외교경쟁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역시 러시아와의 교류와 협력 확대이다. 푸틴 대통령의 연내 평양 방문을 앞두고 사전정지작업 차원에서 북러는 문화·관광·농업·체육 분야의 교류와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12월에 이어 4개월 만에 다시 평양을 방문한 러시아 연해주 대표단은 “조로(북러) 두 나라 사이의 지역 간 경제협조를 보다 높은 단계에서 활성화하기 위한 문제”들을 논의했다. 2월에 시작된 러시아 단체관광객들의 북한 방문도 이어지고 있다. 북한의 군사지원 대가로 러시아가 대북제재를 벗어나 정제유를 지원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북한은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하는 러시아를 활용해 대북 경제제재 무력화를 시도하고 있다.
특히 올해 북한 외교에서 가장 큰 행사는 푸틴 대통령의 평양 방문과 북러정상회담이다. 이를 감안하면 북한이 전면전을 준비한다는 것은 정세와 맞지 않으며, 한반도의 긴장을 촉발하는 국지전 도발 또한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 어렵다.
북한으로서는 실질적인 경제 실리를 얻을 수 있는 중국과의 관계도 중요하다. 북한과 중국은 양국 수교 75주년을 맞아 올해를 ‘조중 우호의 해’로 선포했다. 3월 중국을 방문한 김성남 당 국제부장을 만난 자리에서 중국 서열 4위인 왕후닝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주석(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은 “조선(북한)과 함께 양국 최고지도자의 공동인식을 중조 우호의 실제 행동으로 전환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양국의 전략적 소통 강화를 언급하며 “평화롭고 안정적인 외부 환경을 함께 만들어갈 용의”가 있다고 표명했다. 같은 날 북한 대표단을 만난 중국 측 ‘당 대 당 외교’ 상대역이자 차기 외교부장으로 거론되는 류젠차오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장도 “영역별 우호적 교류와 실무적 협력을 추진하고, 지역의 평화·안정과 발전·번영을 촉진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중국 측의 발언은 노동당 대표단의 “대미, 대적 투쟁 노선과 정책”을 설명한 뒤 나왔다는 점에서 북한의 자제를 촉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회담 내용에서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북중정상회담에 대한 논의가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림 2] 지난 1월 협의를 마친 북한의 기업대표단을 태운 버스가 신의주로 돌아가고 있다.
둘째는 북한이 ‘지방 살리기’ 차원에서 ‘지방발전 20×10 정책’ 실행에 집중하면서 지방 병원과 공장 건설계획을 속속 발표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정은 위원장도 점차 경제현장 현지지도를 늘려가고 있다. 북한은 지난 2월 28일 김 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평안남도 성천군에서 첫 지방공업공장 착공식을 진행한 후 각 지역에서 연이어 지방공업공장 착공식을 진행했다. 올해 공장을 세우기로 한 20개 지역에서 모두 공장 건설의 첫 삽을 뜬 셈이 됐다.
이에 그치지 않고 북한은 각 도에 즉석국수(라면) 공장 건설 사업을 추진하고 있고, 자강도 전천군에서 지방병원 착공식을 시작으로 각 시와 군의 ‘현대적 종합병원’ 건설에 나섰다. 김 위원장은 시정연설에서 “올해 평양종합병원을 완공하여 개원하고 동시에 강원도에 현대적인 종합병원을 건설하면 새 시대에 어울리는 훌륭한 보건시설의 본보기가 마련되게 될 것”이라면서 “앞으로는 매해 다른 도들에도 현대적인 종합병원들을 건설하고 시·군들에도 온전한 병원들을 꾸려 전체 인민이 그 어디에서나 선진적인 의료봉사를 받도록 하여야 한다”라고 지시한 바 있다. 평양종합병원뿐 아니라 도와 시·군 등 지방에도 현대적 병원을 건설하겠다는 구상이다.
이에 따라 2020년에 완공 예정이었던 평양종합병원이 올해 문을 열고, 지방에도 순차적으로 종합병원이 건설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동시에 평양의 5만세대 살림집과 지방도시의 살림집 건설도 계속되고 있다. 북한은 2021년 첫해 송화지구를 시작으로 2022년 화성지구 1단계, 2023년 화성지구 2단계 공사를 거쳐 올해 화성지구 3단계 건설에 착수했다. 지방 시·군에서도 농촌 살림집 완공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북한의 언론매체들도 살림집, 공장, 병원, 학교 등 지방에 새로 들어서거나 리모델링된 시설 보도에 집중해 ‘전쟁’과는 거리가 먼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그림 3] 2023년에 1단계로 완공된 평양 화성지구 거리 모습. 북한은 올해 2단계 1만세대 조성공사를 마무리할 예정이고, 3단계 1만세대 건설 공사도 착공했다.
지난 2월 중국을 방문한 북한의 기업대표단을 만난 중국기업가는 “북한 대표단 사이에서 전쟁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고, 중국과의 경제교류 강화와 지방 건설에 필요한 자재 수입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전했다.
셋째는 평양과 지방 건설을 위해 군부대를 추가로 투입하고, 지방공장 건설을 전담할 군부대까지 새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북한은 지난 3월 15일 평양 강동군에 강동종합온실 건설을 마치고 준공식을 가졌다. 지난해 2월 강동비행장 자리에 군대를 동원해 1년 만에 온실농장을 건설한 것이다. 북한은 공사가 4년째 지연되고 있는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건설도 재개한 것으로 보인다. 이 건설공사 역시 군부대가 주력을 맡고 있다.
[그림 4] 러시아의 지원으로 올해 완공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전경. 현재 외관공사를 마치고 내부 마무리 공사만 남겨둔 상태다.
김 위원장은 시정연설 일주일여 만인 1월 23~24일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19차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지방발전 20×10 정책’ 이행 방안을 지시하고 ‘지방공업혁명을 일으킬 데 대한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19차 정치국 확대회의 결정 관철 투쟁에 인민군부대들을 동원할 데 대하여’라는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 명령에 친필 서명해 이를 총참모장에게 직접 전달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북한은 ‘지방발전 20×10 비상설 국방성지휘조’까지 조직하고 지방 건설에 투입될 인민군 제124연대를 지방별로 새로 편성했다. 이 연대들이 중심이 되어 올해 20개 군에서 시작될 공장 건설을 전담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언론매체에 따르면 “국방성 지휘조에서는 (공사에 투입된 인민군) 연대들이 서로 지역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고 많은 노력과 자재, 윤전기재들이 동원되는데 맞게 통일적인 지휘를 보장하기 위한 정연한 사업 체계”를 세웠다고 한다. 북한의 이러한 움직임 또한 북한이 전면전보다는 경제건설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반도 정세의 평화적 관리와 국제적 협력 모색
북한은 국방과 경제 건설 병진노선을 표방하고 있다. 핵 보유와 경제건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것이다. 실제 성공여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분석이 많다. 그러나 전쟁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전쟁과 경제건설은 양립하기 어렵고, 동시에 추진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북한은 ‘혁명적 대사변’을 거론하며 전쟁 가능성을 경고하는 한편, 10년-15년의 장기적 지방발전 구상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북한이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한반도의 위기지수와 우리의 대응방안도 달라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북한이 현재의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인정하지 않고, NLL보다 남쪽에 설정한 서해 해상경계선까지를 헌법에 영토로 규정하게 되면 서해 NLL 인근은 항상 무력충돌의 위험성을 내포하게 된다. 실제로 김정은 위원장은 헌법에 영토 규정을 추가하고 “불법무법의 《북방한계선》을 비롯한 그 어떤 경계선도 허용될 수 없으며 대한민국이 우리의 령토, 령공, 령해를 0.001㎜라도 침범한다면 그것은 곧 전쟁도발로 간주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충돌 위험성’과 ‘전쟁 결심’은 전혀 다른 문제다. 북한이 이미 전쟁을 결심했다거나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인식이다. 북한이 내부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은 ‘전쟁’보다는 ‘경제 살리기’에 방점이 찍혀 있다. 모든 것이 파괴되는 전쟁을 준비하면서 장기적이고 대대적인 건설 붐을 조성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으로서는 푸틴 대통령의 평양 방문, 러시아·중국과의 경제를 포함한 다양한 분야의 교류를 원만하게 진행하기 위해서 긴장고조보다는 평화적 환경이 필요한 상황이다. 다만 북한이 본격적으로 자신들이 표방한 “대미, 대적 투쟁 노선과 정책”의 정당성을 선전하는 외교전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에 냉전 해체이후 그 어느 때보다 남북 간 외교전이 치열하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한반도 정세를 평화적으로 관리하고 국제적 협력을 모색하려는 다양한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남북 간 충돌, 국지전을 피하고 확전을 막기 위해서는 확고한 방위체제 구축뿐만 아니라 근본적이고 안정적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또한 경제건설에 집중하고 있는 북한의 정책을 활용해 국제협력을 통한 남북 간의 간접 교류나 협력방안 등을 새로 짜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