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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향∙정보

궁금한 북한의 이모저모

북러정상회담 이후
북러·북중 인프라 협력 대비 필요

정창현 소장
머니투데이미디어 평화경제연구소

지난 9월 13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러시아 극동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푸틴 러시아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두 정상은 우주기지를 함께 둘러본 뒤 두 시간가량 회담했지만 공동선언문 발표나 기자회견을 하지 않았다. 아직까지 북러 간 협의내용과 합의 등을 상세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다만 회담 전후에 푸틴 대통령과 크렘린궁 대변인, 주북 러시아대사 등의 언급, 북한 언론매체의 보도 등을 종합해 보면 국제사회가 주목하고 있는 북한의 러시아에 대한 무기제공 문제 외에도 군사기술 협력, 위성개발 지원,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문제, 지역 안보상황, 무역·경제 관계, 교육·문화 교류, 항공과 수송 분야 협력, 인도주의적 문제, 농업 분야 지원 등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논의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북러 정상회담, 전면적인 교류와 협력 합의

북한과 러시아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만족할만한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번 방문에서는 많은 일이 일어났다”며 “우리는 가능한 모든 분야에서 북한과의 관계를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북한의 『노동신문』도 이번 북러 정상회담에 대해 “전통적이며 전략적인 조로친선과 협조, 선린우호관계를 새로운 높이에로 가일층 강화발전시키고 반제자주위업수행을 위한 정의의 투쟁을 힘 있게 고무추동한 사변적 계기”라고 평가했다. 신문은 “최고수뇌분들께서는 두 나라 사이의 고위급 래왕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의 다방면적인 교류협력을 심화시켜 친선단결과 협조관계를 더욱 공고히 다지고 호상(상호)신뢰를 증진시켜 나갈 데 대하여 론의하였다”고 하면서 “회담에서는 호상 관심사로 되는 중요문제들에 대한 폭넓고 깊이 있는 의견교환이 진행되었으며 공동의 노력으로 두 나라 인민들의 복리를 도모하고 종합적이며 건설적인 쌍무관계를 계속 확대해 나갈데 대하여 합의되였다”라고 보도했다. 특히 정상회담에서 “만족한 합의와 견해일치”가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로 이번 북러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은 군사력 강화와 경제난 완화뿐 아니라 러시아와의 관계를 ‘준군사동맹’으로까지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소련 해체 후 북한과 거리를 두던 러시아는 1995년 유사시 자동 군사개입 조항이 포함된 조소(북소)우호조약 폐기를 통보했고, 해당 조항은 2000년 다시 체결된 북러조약에서도 빠졌다. 이번 북러정상회담에서 북러간 안보조약이 체결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있었지만 실현되지는 않았다. 다만 유사시 군사개입을 상정한 소련 시절의 동맹관계를 문서화 하지 않았지만 향후 북한과 러시아가 높은 수준의 군사·안보협력체계를 구축하는 첫걸음을 내디딘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한국과 미국은 북러정상회담 직후 북러 간 무기 거래가 국제사회에 대한 도발이라며 북러 간 무기 거래 차단을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했다. 이번 북러정상회담의 ‘합의와 논의사항’이 어떻게 구체화 될지 아직 예단하기는 어렵다. 북러정상회담을 마친 푸틴 대통령은 중국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고, 북한의 초청에도 수락의사를 밝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중국 방문 가능성도 점쳐진다. 과거처럼 한반도 정세가 긴장과 위기로 치닫게 되면 중국의 중재로 북미, 북일 접촉이 가시화될 수도 있다.

이처럼 한반도 주변 정세는 대단히 유동적이지만 향후 남북 인프라 협력과 남·북·러 경제협력에 대한 국제환경 분석과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대비도 필요한 시점이다. 이번 북러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의 대외 경제협력과 사회문화교류 구상이 단편적으로나마 드러났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북러정상회담 합의로 과거 한국 정부나 기관, 기업에서 구상했던 러시아 극동지역을 매개로 한 ‘남북러 삼각경제협력안’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북러경제협력이 전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세밀한 검토와 대응방안 마련이 필요한 것이다.

러시아와 북한, 대북 제재 무력화 시도

우선 가장 주목할 측면은 러시아가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를 무력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는 2016∼2017년 북한의 계속된 미사일 발사에 대응해 유엔 안보리가 잇따라 강력한 대북제재 결의를 채택하는 데 중국과 함께 찬성표를 던졌다.

그러나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9월 13일(현지시간) 러시아TV 기자와의 대화에서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는 지금과 완전히 다른 지정학적 상황에서 채택됐다”며 “2017년 마지막 유엔 결의안이 승인되었을 때 우리는 더 이상의 대북 제재는 없을 것이라고 확고하게 말했다. 우리의 중국파트너도 동일한 입장을 채택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의 모든 서방측 동료들이 유엔 안보리결의에 따른 조치와 병행해서 정치적 트랙을 추진하고 인도적 이슈도 해결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는 그러나 또 다른 거짓말이었다. 이들은 중국과 더불어 북한과 우리를 기만했다”라고 강력 비판했다. 2017년 유엔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안 채택 때 북한에 대한 제재와 함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정치적 협상과 대북 인도적 지원문제도 협의됐지만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러시아와 중국은 2021년 유엔 안보리에 대북제재 완화 결의안 초안을 제출했지만 미국의 반대로 무산됐다. 당시 러시아와 중국은 건설·난방·철도 관련 장비, 가전제품, 컴퓨터 등에 대한 금수 규정을 비롯해 대북 민수분야 제재에 대한 완화 방안을 제안했다.

이번 북러정상회담을 통해 러시아가 유엔 안보리의 결의를 정면으로 무시하고 북한과 무기 거래를 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할 것이다. 푸틴 대통령도 대북 제재와 연관해 국제의무 준수를 거듭 강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크렘린궁 대변인은 “우리는 양국의 이익이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에 미국 등의 경고가 아니라 두 나라의 이익에 중점을 둘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러시아 측의 입장을 볼 때 러시아는 최소한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결의안을 우회해 민수분야에서 북러 경제협력을 추진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도 9월 17일 “김정은 위원장이 러시아에 온 건 그가 러시아와 전반적인 교류를 원한다는 것을 보여주며, 극동연방관구가 그의 계획의 핵심임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며 “김 위원장은 앞으로 주로 극동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고 이는 아주 좋은 일이며 우리 또한 이 일에 관심이 있다”고 밝혔다.

어떤 협력사업이 논의됐나?

북한과 러시아의 극동지역(연해주지역)과 경제, 인프라 분야 협력을 실행에 옮긴다면 2011년 김정일 위원장의 극동지역 방문, 2019년 4월 김정은 집권 후 열린 첫 북러정상회담, 2019년 북러경제위원회 등에서 논의 또는 합의한 경제협력 방안이 우선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에서는 북한이 러시아에 팔 물건도 적고, 러시아산 제품을 수입할 돈도 없기 때문에 북러 간 실질적 교류는 노동력 공급 등에 한정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번 북러정상회담의 분위기로 볼 때 무역 외에도 관광, 농업, 물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질적 지원과 협력 가능성이 높아졌다. 북로정상회담 직후 올레그 코제먀코 연해주 주지사는 “농업·경제 분야 대표단과 함께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라며 “무역, 경제, 관광, 농업 등 분야 전문가 집단이 모여 제대로 된 방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북 경제제재의 제약을 받지 않는 두만강에 도로 교량 건설 사업, 하산과 나진항을 잇는 철도를 활용한 물류 확대, 관광분야 협력 등이 우선적으로 추진될 수 있다. 이러한 사업은 이미 2019년에 논의됐지만 코로나19사태로 중단된 상태였다. 다만 연해주 정부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북측과 관광 분야 협력을 위한 협정을 추진해왔다.

2011년 북러정상회담에서 논의됐던 아무르주의 20만ha 규모의 유휴 농지를 빌려 대규모 농장을 설립해 곡물을 생산하는 방안이 다시 추진될 지도 주목된다. 북한은 2013년 아무르주에 1000ha 규모의 작은 시범농장을 시작하고 이듬해까지 운영했었고, 2014년에는 극동지역에 최대 1,500만 달러의 농장 투자를 제안하기도 했다. 당시 북한은 농지 1만 헥타르를 임대하고, 필요한 농업 장비를 현지에서 조달하는 한편, 북한의 농업 관련 전문 인력을 현지에 파견할 의향이 있다고 세부적인 계획을 제시했었다. 러시아 역시 국제사회의 제재 이후 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 필요성이 높아졌고, 낙후된 극동 지역 개발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과 러시아의 농업협력은 추진 가능성이 높은 사업이다. 북한도 식량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2014년에 착공식을 가졌지만 강화된 대북경제 제재조치로 중단된 상태인 재동역(평안남도 은산군)-강동역(평양시 강동군)-남포역(남포시) 구간 철도 개건사업도 재개될 가능성이 크다. 당시 러시아 모스토비크 과학생산연합체는 북한 정부와 총 3천500km 길이의 철도를 현대화하는 ‘포베다(승리) 프로젝트’에 합의한 데 이어 250억 달러(약 27조 원) 규모의 투자계획도 세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러시아 극동지역의 유휴 전력을 전력난에 시달리는 북한으로 공급하는 사업도 다시 추진될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가 함경북도 나선과 청진, 함경남도 단천, 강원도 원산-금강산 등 동해안 지역에 전력을 공급하고 대신 북한은 함경북도 온성의 구리광산 개발권을 러시아 측에 제공하는 사업이다. 2015년 당시 이 사업을 주도하는 러시아 국영전력회사 관계자는 “현재 사업타당성 조사가 이뤄지고 있고 이것이 끝나면 송전선 설계 작업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당시 러시아가 연해주에서 나선까지 약 63km의 송전선을 건설하면 러시아와 북한 측의 투자금은 각각 15억 루블(약 300억 원), 20억 루블(약 400억 원) 규모가 될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이외에도 러시아는 북한의 석유화학공장 현대화 사업, 동평양발전소 현대화, 러시아 여객기 투볼례프(Tu)-204의 북한 수출, 러시아 가스관 연결 등 대북제재 또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중단된 사업을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과 러시아는 이번 북러정상회담의 후속조치로 조만간 북러 외무장관회담, 4년간 중단됐던 ‘북러 통상경제‧과학기술 협력 정부 간 위원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북한 방문을 요청했고 푸틴 대통령이 이를 공식 수락했기 때문에 향후 평양 북러정상회담 개최 때까지 러시아의 대북 지원 및 경제협력 방안들이 구체화 될 것으로 보인다.

인프라 사업에서 한국 주도권 확보 방안 마련해야

문제는 남북관계가 녹록치 않다는 점이다. 2022년 8월 15일 윤석열 대통령이 ‘담대한 구상’을 밝히자 북한의 대외·대남 책임자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이겠는지, 또 북남관계를 아는 사람들이 어떻게 평할런지도 전혀 개의치 않았으니 그 나름대로의 ‘용감성’과 넘치게 보여준 무식함에 의아해짐을 금할 수 없다”고 평가절하하고, “제발 좀 서로 의식하지 말며 살았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소원”이라고까지 발언했다. 남북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인 것이다.

과거 ‘나진-하산 프로젝트’와 시베리아횡단열차(TSR)-한반도종단열차(TKR) 연결사업, 연해주 농장 경영사업 등은 남과 북이 함께 참여하는 국제 다자협력사업으로 구상되었다. 단적인 실례로 2019년 광복절 축사에서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우리가 원하는 나라는 농업을 전공한 청년이 아무르강가에서 남과 북, 러시아의 농부들과 대규모 콩농사를 짓고 청년의 동생이 서산에서 형의 콩으로 소를 키우는 나라”라고 언급했다. 그런데 한국이 배제된 채로 이러한 사업들이 추진될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당연히 남과 북의 협력사업으로 여겼던 경의선 철도 현대화 및 연결사업도 중국 주도로 넘어가는 분위기다. 중국은 북한과의 군사적 협력에는 소극적 태도를 유지하고 있지만 북한의 국경 개방 이후 인도적 지원뿐만 아니라 농업·의료·관광협력을 준비하고 있다. 북러 간 인프라 협력 사업이 구체화 될 경우 중국도 경의선 고속철도 건설사업에 나서려고 할 것이다.

현실적 가능성은 낮지만 러시아가 제안한 북·중·러 연합군사훈련이 실현될 경우 강화된 한·미·일 군사협력과 맞물리면서 한반도는 격랑 속으로 빠져들 수 있다.

한·미·일의 안보 협력을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으로 평가되는 지난 8월의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 직후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은 이를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과 같은 글로벌 위협을 빌미로 아태지역에 블록 대 블록의 대결 구조를 촉진하려는 삼각관계”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캠프 데이비드 합의를 비난하면서도 동북아에 ‘포괄적 안보 구조’를 만들어 한반도의 ‘긴박한 문제들’을 포함해 군사적·정치적 긴장을 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러시아와 중국은 지난 3월 정상회담에서 쌍중단(북한의 핵·미사일 시험 및 한·미의 연합훈련 중단), 평화협정 협상, 다자간 지역안보체계 확립과 비핵화 협상 병행 등 3가지 내용을 담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러·중 공동방안을 확인했다. 올해 10월로 예고된 북러 정상회담에서도 이 같은 공동방안을 재확인하고, ‘중러 군사 협력과 한반도 상황’을 주요 의제로 다루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북러 간 밀착으로 동북아에서 국제질서의 진영화가 심화되는 상황은 우리의 외교안보 측면에서 상당한 도전이고 쉽지 않은 난제를 안겨주고 있다. 그러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9월 19일(현지시간) 유엔 총회 연설에서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을 규탄하면서도 “외교적인 방법을 통한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거듭 확인한 것처럼 현재의 난국을 헤쳐 나가는 해법은 다양한 외교적 방법을 동원하는 것이다. 또한 한국을 배제한 채 추진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북러, 북중 경제·인프라 협력 사업에 대해서도 새로운 차원에서 대처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