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Description

동향∙정보

궁금한 북한의 이모저모

평양 팬데믹 씬
(Pandemic-scene)

안진희 연구원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남북한인프라특별위원회

시작하며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이하 코로나19)가 발생했을 때 신문과 방송은 전 세계의 팬데믹 현황을 중계함으로써 국가별 대응 체계를 비교하고 공유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다만 북한은 코로나19 관련 현황을 제공하지 않았고, 감염자도 없다고 주장했다(통일연구원, 2020). 북한은 코로나19 발생 후 선제적으로 국경을 봉쇄한 바 있다(오승준·하승희, 2020). 관련 정보와 국경의 불투명함과는 대조적으로, 북한은 자국 보도 매체를 통해 감염병 대처 방식을 보여줬다. 2021년 9월 9일 북한 건국절에 진행한 일명 ‘방역복 열병식’이 대표적이다.

국가 행사가 화려하고 주목성을 가질수록 그 이면에 위치한 생활상은 더욱 감춰질 수 있다. 국경 봉쇄는 경제적 여파로 이어지고, 이는 여러 분야의 산업과 주민 생활에 영향을 미친다(이용희, 2021).1) 이 글에서는 북한 당 기관지인 로동신문을 통해 팬데믹 상황에서의 평양을 살펴보려 한다. 북한은 2020년 1월 21일 조선중앙티비에서 국경봉쇄와 국가비상방역체계를 선포하여 코로나19에 공식 대응하기 시작하였다. 이를 참고하여 2020년 1월부터 2021년 8월까지를 ‘코로나19 발생 후’ 시기로, 그 이전인 2018년 1월부터 2019년 8월까지를 ‘코로나19 발생 전’시기로 정하여 살펴보았다. 총 40개월간의 로동신문 보도사진 중 평양에서의 주민 생활환경을 나타내는 보도사진을 수집했으며, 이는 모두 3,533장이다.

팬데믹, 씬

도시에서 씬은 지역사회에서 사람들의 행동이 만들어내는 장면이다. 어빙 고프먼(Erving Goffman, 1959)은 이러한 씬이 그곳만의 사회적 장치에 좌우된다고 지적한다. 여기서 사회적 장치는 행동하는 개인의 태도, 행동을 좌우하는 환경적 요건, 행동을 촉발하는 장소적 관행으로 구성된다. 테리 클라크(Terry N. Clark, 2007)는 씬 개념을 현대 도시로 확장하여, 씬이 도시의 고유성을 형성하는 문화적 특질임을 강조했다.

이 글은 로동신문 보도사진에서 볼 수 있는 도시의 씬이 장소의 성격, 등장인물의 행동 목적, 모인 인원 규모의 합으로 연출된다고 규정하였다. 북한 뉴스는 ‘사건’이 아닌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제반 노력’을 보도한다(한국언론학회, 1994). 이러한 특수성을 감안할 때, 북한의 보도사진은 북한이란 지역사회이기에 용인되는 사회적 장치를 프레임으로 규격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은 팬데믹이라는 변수에 대응한 북한의 사회 건설을 위한 노력이 귀결된 시각적 특징을 파악하기 위해, 북한의 수도 평양의 팬데믹 씬을 고찰하고자 하였다.

로동신문 보도사진으로 북한 도시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가?

수집한 보도사진은 세 가지 기준−‘평양 어디를 촬영했는가?’ (장소 성격), ‘그곳에 사람들이 무엇을 위해 모였는가?’ (행동 목적), ‘몇 명 정도의 사람이 모였는가?’ (인원 규모)−에 따라 각 사진의 특성을 분류했다. 이는 보도사진이 나타내는 장소의 성격과 그 장소가 쓰인 목적, 그리고 그 목적을 위해 어느 정도의 주민이 동원되었는가를 지도에 시각화하여 팬데믹 전후의 평양을 한눈에 비교하기 위해서다. 지리적 시각화 매체는 마이크로소프트 엑셀(Microsoft Excel) 3D맵의 열지도 기법을 활용하였다. 3D맵의 열 확산 포인트는 촬영된 위치를 나타내며, 그 위치에 많은 사람이 모이거나 그곳을 대상으로 한 보도 횟수가 늘어날수록 열 확산 정도는 높게 표출된다.

장소 성격, 행동 목적, 인원 규모에 따라 각 보도사진을 분류했을 때 그 합이 코로나19 발생 전후의 평양의 변화를 적절히 보여줄 수 있는가를 시험해보기 위해, 평양에서 사람들의 왕래 활동이 일어난 장소의 변화를 그림 1과 같이 지도에 시각화했다. 코로나19 발생 전에는 평양국제비행장이 평양역보다 더 높은 열 확산 정도를 보이지만 이와 반대로 코로나19 발생 후에는 평양역의 열 확산 정도가 더 높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국제공항을 통한 국내외 이동이 내부 이동에 비해 활발했던 것과 달리, 팬데믹 상황에 들어서면서 기차역을 통한 국내 이동이 상대적으로 활성화됐음을 의미한다.

[그림 1] 코로나19 발생 전후 평양의 주요 왕래 활동 거점(Source: Excel 3D Maps)

보건 활동의 거점 변동

팬데믹 상황에서 북한이 고유한 방역 체계를 선전한 만큼, 코로나19 발생을 전후로 평양에서 보건 활동이 일어나는 장소나 규모에 변화가 있었는지 그림 2와 같이 살펴보았다. 코로나19 발생 전에는 보건 활동이 몇 개의 한정된 장소에서 집중적으로 일어났고, 그 장소가 김일성종합대학 평양종합병원, 류경안과종합병원과 류경치과병원, 옥류아동병원과 같이 보건 관련 시설인 것을 볼 수 있다. 반면 코로나19 발생 후에는 보건 활동이 특정 장소에서 집중되기 보다는 평양에 전체적으로 분포되어 나타났다. 이는 팬데믹 시기에 보건과 관련된 활동이 병원뿐만 아니라 보건과 관련이 없는 여러 장소에서 더 많이 일어났음을 보여준다. 병원 외 장소에서의 보건 활동은 방역 및 소독이 주요 목적임을 짐작할 수 있으며, 이는 해당 시기의 로동신문에서 매일 같이 확인할 수 있다.

[그림 2] 코로나19 발생 전후 평양의 주요 보건 활동 거점(Source: Excel 3D Maps)

선전 활동의 거점 변동

코로나19가 가져온 전 세계적 변화 중 하나로 온라인 대화, 재택근무, 자급자족 생활 등과 같은 비대면 활동의 증가를 꼽을 수 있다.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 당연했던 일들이 점차 개인적인 공간에서도 가능해졌으며, 이는 새로운 일상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한편, 북한 주민의 당 회의 결정 사항에 대한 지도 및 습득, 당이 제시한 과업의 달성을 독려하기 위한 궐기대회, 구호를 통한 대중동원 운동, 경제선동 등은 집단을 전제로 하는 북한의 대표적 대면 활동이다.

방역을 위한 비대면 활동이 일상화되어가는 팬데믹 상황에서, 모여서 했던 북한의 선전 활동에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는지 그림 3과 같이 살펴보았다. 코로나19 발생 전에는 선전 활동이 일어나는 장소를 몇 군데로 추릴 수 있는데, 중앙계급교양관, 인민문화궁전, 과학기술전당, 김정숙평양방직공장이 가장 두드러진다. 이 중 김정숙평양방직공장을 제외하고는 대중 교양을 목적으로 하는 북한 문화 시설에 해당한다. 이 시기 주민의 선전 활동은 ‘선전’이라는 활동 목적과 ‘문화’라는 장소 용도 간의 연관성을 확인할 수 있다.

코로나19 발생 후에는 전보다 훨씬 다양한 장소에서, 더 잦은 빈도로, 더욱 다수의 인원이 모여 선전 활동이 전개되었다(그림 3). 열 확산 정도에 따라 주요 선전 활동 장소를 김정숙평양방직공장, 평양화력발전련합기업소, 평양금속건재공장, 평양구두공장, 평양시 1만 세대 살림집건설장(송신·송화지구), 금수산태양궁전으로 꼽을 수 있는데, 마지막을 제외하고는 모두 중공업·경공업·건설업이 진행되는 산업 현장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팬데믹 시기 동안 주민의 선전 활동은 그 전보다 평양 전방위적으로 확장되어 일어난 동시에, 그 장소는 문화 시설에서 산업 현장으로 전환되었다. 선전이란 행위와 본래의 장소 용도 간의 연관성이 약화된 것이 팬데믹 시기의 특징이며, 이를 통해 당시 산업시설의 가동률 저하를 짐작할 수 있다.

[그림 3] 코로나19 발생 전후 평양의 주요 선전 활동 거점(Source: Excel 3D Maps)

건설 활동의 거점 변동

만약 산업시설의 가동률이 저하될 만큼 당시 북한의 경제적 사정이 어려웠다면, 건설산업 또한 코로나19 발생 전보다 시설의 건설 개수가 줄거나 건설물의 규모가 축소될 수 있다. 이러한 가정을 바탕으로, 코로나19 발생 전후 주민의 건설 활동이 일어난 장소를 그림 4와 같이 비교하였다. 코로나19 발생 전 건설 활동은 평양시 체육촌, 대성산샘물공장, 평양대동강수산물식당을 짓기 위한 것으로, 건설 결과물이 주민 여가 생활과 먹거리에 관련된 산업시설이라는 공통점이 나타났다. 반면 코로나19 발생 후에는 평양시 1만 세대 살림집건설장과 평양종합병원건설장에서의 건설 활동이 두드려졌다. 주택단지와 종합병원같이 대규모이면서 여가보다는 주민 생활에 기초적으로 요구되는 핵심 시설 건설에 주민 활동이 집중된 것이 특징이다.

[그림 4] 코로나19 발생 전후 평양의 주요 건설 활동 거점(Source: Excel 3D Maps)

평양 팬데믹 씬

코로나19 발생을 전후로 비교한 평양은 다음과 같은 특징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로, 소독과 방역이 사회적 쟁점에서 절대 우위에 있었다. 평양 전역에 가시화된 보건 활동과 그 활동이 일어난 장소가 이러한 논의를 뒷받침한다.

둘째로, 문화 시설에서 산업 현장으로 선전 활동이 일어난 장소의 거점이 전면 전환되었다. 이러한 변화의 원인으로 세 가지 가능성을 고찰할 수 있다. 하나는 당시에 산업시설의 생산력 고취나 생산 목표량의 제시보다 정치적 선전이 더 필요한 상황에 직면했을 가능성이다.2) 다른 하나는 산업시설의 생산성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다른 쟁점을 내보이기 위한 대체 무대로 활용했을 가능성이다. 마지막으로 로동신문의 보도 방식 변화와 관련됐을 가능성이다. 로동신문은 2021년 초반부터 산하 12개 부서에서 대외 관련 부서를 통폐합하고 대내 부서를 늘리는 개편을 실행했다(김인태, 2021). 대내 부서가 확장되면 그 대상이 되는 대중에 대한 사회 교양 부문이 증가로 이어지게 되며, 이에 따라 이념 관련 고양과 선전 내용을 보여주기 위한 주민의 활동 장소 또한 증가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 셋째로, 비교한 코로나19 전후 시기 동안 준공된 건축물에서 ‘실질적 생산성’과 ‘주민 생활에 인접한 대규모 경관’이라는 서로 다른 지향점을 읽을 수 있다. 북한이 보통강지구나 송신·송화 지구와 같은 살림집 건설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 만성화된 경제난에서 민심을 달래기 위한 수단이라는 풀이 또한 팬데믹 상황에 나타난 주민 활동 거점의 변화를 설명해준다(서울신문, 2021.10.10.). 나아가 시각적으로 크고 화려하게 보일 수 있는 건축물이 국가 대내외에 경제적 안정성을 나타내기 적합했을 것이란 추측도 할 수 있다.

종합하면 코로나19 발생 후 주민 활동이 일어난 평양의 팬데믹 거점은 주택단지 건설현장이 위치한 사동구역 내 송신지구와 송화지구, 그리고 김만유병원, 류경치과병원, 류경안과종합병원 등이 밀집한 대동강구역 중심부로 모두 대동강 남단 동측으로 귀결된다. 이곳의 사회적 장치가 만들어낸 평양의 팬데믹 씬은 대규모, 새것, 보건 위생이 전면에 내세워졌지만, 실질적 생산의 가시성은 흐려진 도시다.

※ 이 글은 다음의 논문을 요약·발췌하여 작성하였습니다.
안진희(2022). 팬데믹 전후 평양 도시 씬 비교: 2018~2021년 로동신문 보도사진을 중심으로. 국토연구, Vol. 112, pp. 3-21.

1) 이용희(2021)는 코로나 19로 인한 북한 국경의 폐쇄가 주민 생계에 위협이 되는 점을 지적했는데, 이는 북한 전체 무역의 95%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과의 수출입이 중단되면서 장마당의 상품이 고갈된 것과 관련이 있음.

2) 로동신문은 2020년 6월 6일부터 23일까지 탈북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에 항의하는 북한 주민의 모습이 담긴 16장의 사진을 게재했음. 배경이 된 장소는 평양종합병원건설장(2장), 평양화력발전련합기업소, 김종태전기기관차련합기업소, 청년공원야외극장, 김정숙평양방직공장, 련못무궤도전차사업소역전대대, 중구역 내 미확인된 시설, 평양자동화기구공장, 평양방직기계공장, 락랑궤도전차사업소, 평양블로크공장, 서평양기관차대, 김철주사범대학, 락랑영예군인수지일용품공장, 평양출판인쇄대학으로, 다수의 산업 시설을 포함함.

참고문헌

  • 한국언론학회(1994). 언론학원론, 서울: 범우사.
  • 통일연구원(2020). 감염병 공동대응을 위한 남북인도협력: 코로나19를 중심으로
  • 오승준, 하승희(2020). 코로나19에 대한 북한의 대응: 『로동신문』 보도를 중심으로. 북한연구학회보, Vol. 24, No. 2, pp. 1-38.
  • 김인태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2021). 2021 통일연구원 북한도시포럼 토론, 12월 1일, 서울.
  • 이용희(2021). 코로나19로 인한 북한의 식량 위기와 대책. 통일전략, Vol. 21권, No. 2, pp. 67-102.
  • 서울신문(2021.10.10.), 北, 두 달 만에 아파트 뚝딱…살림집 건설에 총력.
  • Goffman, E.(1959). The presentation of self in everyday life, Garden City, N.Y. : Doubleday.
  • Clark, T. N.(2007). Making Culture Into Magic: How Can It Bring Tourists and Residents?. International Review of Public Administration Vol. 12, No. 1, pp. 1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