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Description
궁금한 북한의 이모저모
북한 8차 당대회에서 평양 5만호 주택 건설 발표
상징적 건물과 거리 조성에서 일반 주택단지 건설로 선회
머니투데이 평화경제연구소 소장
북한은 지난 1월 열린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새로운 ‘경제발전5개년계획’을 발표했다. 새로운 경제발전5개년계획은 지난 5년간 ‘경제발전5개년전략’ 수행과정에서 미달한 부문을 보완하고 정비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북한은 경제발전5개년계획의 총적방향을 “경제발전의 중심 고리에 력량을 집중하여 인민경제전반을 활성화하고 인민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는 튼튼한 토대를 구축하는 것”으로 설정했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부분에 선택과 집중을 하겠다는 구상이다.
이와 관련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8차 당 대회 ‘사업총화보고’에서 “현 단계에서 우리 당의 경제 전략은 정비전략, 보강전략으로서 경제사업체계와 부문들 사이의 유기적 련계를 복구정비하고 자립적 토대를 다지기 위한 사업을 추진하여 우리 경제를 그 어떤 외부적 영향에도 흔들림 없이 원활하게 운영되는 정상궤도에 올려 세우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8차 당 대회에서 지난 5년간 추진된 ‘국가경제발전5개년전략’이 “거의 모든 부문에서 엄청나게 미달되었다”고 인정했다. 이것은 ‘국가경제발전5개년전략’의 기본목표인 “인민경제 전반을 활성화하고 경제부문 사이의 균형을 보장하여 경제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데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북한은 새로운 5개년계획에서 우선 미달된 부분에 대해 정비하고 보완할 필요성이 생겼다. 과거에도 북한은 경제발전계획이 미달할 경우 2-3년의 완충기(과도기)를 설정했다.
8차 당 대회에서 북한은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의 부진에 대해 객관적 요인으로 △미국과 적대세력들이 감행한 최악의 야만적인 제재봉쇄 책동 △해마다 들이닥친 혹심한 자연재해 △지난해에 발생한 세계적인 보건위기의 장기화를 꼽았다.
그러면서 주체적으로는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이 제대로 입안되지 못하고 △과학기술이 실제 나라의 경제 사업을 견인하지 못했으며, △불합리한 경제사업체계와 질서가 정비되지 못했다는 점을 극복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특히 객관적 요인보다는 주체적 요인들에 대한 비판과 극복 방안에 집중했다.
새로운 경제발전5개년계획을 짜면서 건설 분야에서는 평양에 매년 1만 세대 씩, 5년간 5만호의 주택을 짓고, 함경남도 검덕지구에 매년 5천 세대 씩 2만5천세대의 살림집(주택)을 새로 건설하며, 해마다 모든 시·군들에 시멘트 1만 톤씩 보장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대북경제제재가 계속되고 있는 조건에서 자력갱생으로 이 같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지는 불투명하다. 북한은 2008년에도 2012년까지 평양시에 10만세대의 주택을 완공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만수대거리 재건축 외에는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고, 김정은 체제 출범 후에 창전거리, 미래과학자거리, 려명거리 등에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조성했지만 1만2천여 세대를 건설하는데 그친 바 있다. 지방의 주요 도시들도 도시재건설을 위한 청사진이 마련됐지만 시내 중심부의 재건축이나 일부 아파트와 건물의 신축에 그쳤다.
실제로 8차 당 대회가 끝난 후 구체적인 추진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내각은 시멘트 등 자재 부족 등을 이유로 목표치를 낮추려고 했다. 그러자 김정은 위원장은 2월에 다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2차 전원회의를 열고 “보신과 패배주의의 씨앗”이라고 비판하며 “올해 평양시에 1만 세대 살림집을 무조건 건설”하라고 지시했다. 북한이 8차 당 대회를 통해 ‘현실적 목표와 계획’ 수립을 강조했지만 평양시 1만 세대 건설 사업만은 국가적 정책목표로 다시 한 번 확인한 셈이다.
북한은 대체로 20년을 주기로 평양현대화사업을 추진해왔다. 이것은 시기적으로 새로운 후계자의 등장이라는 ‘정치적 수요’와도 맞아떨어졌다.
북한은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평양을 1950-60년대에 ‘사회주의 계획도시’로 재건설했다. 모스크바 유학파로 통상 ‘북한 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는 김정희가 평양 재건 기본계획을 설계했고, 평양 도시계획국장을 지내면서 1960년대 재건 사업을 이끌었다. 이때 김일성광장을 중심으로 하는 현재 평양의 기본골격이 완성됐다.
[그림 1] 1951년 소련 유학파 김정희의 주도로 입안된 ‘평양시개건종합계획약도’. 이 계획안은 몇 차례 수정을 거쳐 전후 평양시 건설의 기본계획이 되었다.
이후 1970년대에 김정일이 후계자로 등장하면서 평양은 새로운 ‘수도건설구상’에 따라 변모하기 시작했다. 이때를 북한은 ‘창조와 건설의 전성기’였다고 평가한다.
우선 1970년대 중엽 낙후지역이었던 평양시 보통강구역 낙원동 일대에 3,000세대의 살림집을 지어 하나의 거리를 형성하기 위한 건설사업이 이뤄져 낙원거리가 조성됐다. 이어 고려호텔이 있는 ‘윤환선거리’의 건물들을 허물고 거기에 새 거리를 건설하는 대규모 건설사업이 진행됐고, 거리의 이름도 ‘창광거리’라고 명명했다. 15년 동안 평양시에는 비파거리, 대학거리, 문수거리, 안상택거리, 청춘거리, 광복거리 등 많은 거리들이 새로 들어섰고, 평양을 상징하는 주체사상탑, 개선문과 같은 ‘대기념비’, 만수대예술극장, 고려호텔, 창광원, 빙상관, 청류관, 인민대학습당, 5월1일경기장, 동평양대극장과 같은 ‘기념비적 건축물’들이 건설됐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이라고 불리는 최악의 경제난을 겪은 북한은 2000년대 후반부터 다시 ‘평양현대화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2008년 6월 평양 방문 때 만난 북측 관계자는 “평양을 현대화해 면모를 일신한다는 차원에서 2004년부터 순차적으로 정비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라며 “단기적으로 (2008년) 공화국 창건 기념일에 맞춰 공사를 속도 있게 진행하고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평양을 전면 개조한다는 청사진에 따라 단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김정은 후계자의 등장과 함께 본격화된 이 사업은 만수대거리 재건설을 시작으로 여명거리 건설로 이어졌다. 이 기간에 창전거리, 미래과학자거리, 여명거리 등 새로운 고층아파트 밀집거리가 조성되고, 은하과학자거리를 비롯한 주택단지 건설과 함께 1980년대에 건설된 ‘기념비적 건축물’에 대한 대대적인 리모델링 사업이 벌어졌다. 그러나 평양의 신규 건설 주택은 공장과 협동농장에 지어진 기숙사와 살림집 등을 포함해도 2만 세대를 넘지 않은 것으로 추산된다.
이런 측면에서 8차 당 대회에서 발표된 평양 5만호 주택 건설사업은 200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평양현대화사업’의 2단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1단계가 김정은 시대를 상징하는 거리 조성, 노후화된 ‘기념비적 건축물’의 리모델링에 치중했다면 2단계에서는 ‘인민대중제일주의’를 내세우며 일반 시민들의 피부에 와 닿는 주택난 해소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와 함께 2000년대에 계획됐지만, 추진이 제대로 되지 않은 신의주, 청진 등 주요 대도시의 현대화사업, 산간마을의 본보기로 재건설된 삼지연시를 모델로 하는 군(郡) 단위 재건설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8차 당 대회에서는 특별히 지방 시·군에 연간 1만 톤의 시멘트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2009년 이후 10년간 이뤄진 평양의 주택 건설사업이 2만 세대 정도에 그쳤다는 점에서 평양시에 연 1만호씩, 5만 세대를 건설한다는 계획은 과연 현실적일까? 자금과 자재공급 등 여러 측면에서 무리가 따를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북 경제제재와 코로나19 사태로 주요 수입원인 지하자원 수출과 해외관광객 유치가 중단된 상황이라 목표달성 여부는 더욱 불투명하다.
북한은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미 2019년 당 제7차 5차전원회의 보고에서 “미국과의 장기적 대립을 예고하는 조성된 현 정세는 우리가 앞으로도 적대세력들의 제재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각 방면에서 내부적 힘을 보다 강화할 것을 절박하게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당과 내각의 간부들뿐만 아니라 주민들에게 경제제재 국면이 장기적으로 지속될 것이라는 점을 처음으로 공식화 한 것이다. 그는 대외관계뿐만 아니라 경제 분야에서도 상황이 어렵고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는 점을 솔직히 인정하고, 장기적으로 ‘정면돌파전’을 주문했다.
북한의 이러한 정세인식과 기조는 올해 8차 당 대회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김 위원장은 당 대회 ‘결론’에서 “오늘 우리 혁명의 외부적 환경은 의연 준엄하고 첨예하며 앞으로도 우리의 혁명 사업은 순탄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내부적 힘을 전면적으로 정리정돈하고 재편성하며 그에 토대하여 모든 난관을 정면 돌파하면서 새로운 전진의 길을 열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기전이 예상되는 북미협상에 기대하기보다는 경제제재를 상수로 두고 당분간 내부 경제 관리체계를 정비하고, 내부 자원 동원을 통해 경제건설을 하는 데 집중하겠다는 고육지책이다. 이전에 대외협력과 외자유치에 기대를 걸었던 것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북한은 2000년대 중반부터 “평양시현대화사업‘을 구상하면서 외자 유치에 공을 들였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동평양상업거리’ 개발 사업이다. 동평양상업거리 개발구상은 2000년대 중반 북한과 홍콩기업의 합작으로 세워진 금강경제개발총회사의 주도로 시작됐다. 평양 낙랑구역 인근 대동강 변에 대규모 비즈니스타운을 건설한다는 ‘금강거리(상업거리)’ 조성사업은 당시 만들어진 조감도에 따르면 50층 트윈타워 호텔을 비롯해 무역센터, 백화점, 오피스텔 등을 건설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림 2] ‘동평양상업거리’로 개발될 예정인 대동강변의 부지. 평양 중심부에서 평양-개성고속도로로 이어지는 충성의 다리와 양각도 사이 대동강 변에 위치 해 있다. 2016년 착공식만 연 채 공사가 전혀 진척되지 못했다. 가운데 원안은 2014년경에 완공된 ‘통일거리상업봉사망’ 건물이고, 뒤쪽 타원으로 표시된 곳이 3월 23일 1만 세대 살림집 건설 착공식을 가진 송신, 송화지구이다.
그러나 당시 북한 관계자도 “과거 홍콩기업 중에는 공화국에 10억 달러 이상의 대규모 투자의사를 밝힌 기업도 있었지만, 미국의 제재와 중국의 견제로 마지막 단계에서 포기한 사례가 여럿 있었다”며 “금강경제개발총회사가 구상하고 있는 투자계획이 성사돼 이 같은 국제적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한 입장을 보일 정도로 이 사업의 추진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실제로 2008년 6월 이곳을 방문했을 때 거대한 조감도만 세워져 있고, 공사는 진행되지 못하고 있었다. 6년 뒤인 2016년 북한은 홍콩계 재벌기업 ‘대중화국제투자집단유한공사’와 함께 ‘동평양지구 상업거리’ 착공식을 공개적으로 열었다. 착공식 때 군인 건설자를 대표해 축사를 한 김정관 중장은 현재 국방상이 됐다. 하지만 대북 경제제재가 강화되면서 실제 건설사업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2018년 북한은 남북관계와 북미관계 진전을 통해 일부 제재완화를 시도했지만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로 이마저 여의치 않게 됐다.
[그림 3] 2000년대 중반 ‘금강거리’로 명명된 ‘동평양상업거리’의 개발 조감도.
북한이 외자 유치에 기대를 걸었던 또 다른 사례가 있다. 북한은 2011년 1월에 ‘국가경제개발 10개년 전략계획’을 발표했다. 당시 북한은 ‘10개년 전략계획’을 발표하면서 “하부구조 건설과 농업, 전력, 석탄, 연유, 금속 등 기초공업, 지역개발을 핵심으로 하는 국가경제개발의 전략적 목표를 확정”했다고 공개한 바 있다. 조선대풍국제투자그룹이 작성해 공개한 ‘경제개발중점대상 개요’에 따르면 10년간 총 1,000억 달러를 투자해 대대적인 인프라 건설을 추진하겠다는 거창한 계획이었다. ‘동평양상업거리’ 개발과 마찬가지로 외자 유치를 염두에 둔 구상이었다.
[그림 4] 조선대풍국제투자그룹이 작성한 ‘경제개발중점분야’에 포함되어 있는 ‘경제개발중점대상 개요’ 도표.
북한은 “국가경제개발 전략대상들을 실행하는데서 나서는 문제들을 총괄”하는 정부 기구로 국가경제개발위원회와 국가경제개발총국도 설립했다. 또한, 국방위원회 산하에 설립된 조선대풍국제투자그룹에 국가경제개발 전략계획에 속하는 주요 대상들을 전적으로 맡아 실행할 것을 위임했다.
추상적이지만 북한은 자금조달 방식도 공개했다. 2011년 신년공동사설에서 북한은 “원료, 자재생산을 주체화, 국산화하기 위한 투쟁에 커다란 힘을 돌려야 한다”며 재정 마련을 위해 지하자원 개발을 거론했다. 풍부한 지하자원을 적극 개발 이용해 “인민생활 향상과 경제강국 건설에 필요한 원료도 해결하고 자금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장성택 행정부장의 숙청과 함께 조선대풍국제투자그룹 자체가 유명무실화됐고, 압록강과 두만강 접경지역에 설정된 경제특구를 북중간 공동개발·공동관리 방식으로 개발한다는 계획 자체도 폐기됐다.
또한, 자원 개발을 매개로 적극적인 외자유치를 통해 인프라 개발에 나서려는 북한의 구상도 경제제재가 이어지면서 난관에 봉착해 있다. 오히려 경제제재가 강화되면서 광물자원 수출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조건은 자력갱생전략을 내세우는 북한이 중국, 러시아와 경제협력을 더 강력하게 추진하게끔 할 수 있다. 빠르면 4월 중순에 준공식을 할 수도 있다는 ‘신압록강대교’ 개통이 그 신호탄이 될 수 있다.
2017년 여명거리를 완공한 후 북한은 속도전을 벌여 단기간에 건설한, 길이 3km의 여명거리를 대북 제재에 대한 승리라고 주장하고, 제재가 소용없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라고 선전했다. 여명거리 사례처럼 북한이 더 촘촘해진 대북 경제제재 속에서 자체의 힘으로, 경제발전5개년계획 기간에 평양시와 지방의 건설사업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는 올해 건설하기로 한 평양시 1만 세대, 검덕지구 5천 세대 주택 건설의 성공 여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자력갱생전략’이라는 선전의 이면에는 목표달성을 위한 대외협력 가능성이 숨어 있다. 북한에서 자력갱생과 대외경제협력은 모순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