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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논단
새정부 출범에 따른 남북 관계와 인프라 협력 전망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
북한이 핵실험 재개 준비를 하고 미·중 대결이 심화되는 되는 등 안보와 경제의 딜레마 속에서 윤석열 정부가 출발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5월 10일 취임사에서 “북한이 핵 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한다면 국제사회와 협력해 북한 경제와 북한 주민의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담대한 계획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윤석열 대통령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대화의 문을 열어놓겠다고도 했다. 북한을 대화와 협상의 상대로 여기되 비핵화 협상은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추진하겠다는 대북정책 기본 방향을 밝힌 셈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5월 3일 발표한 국정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의 안보 및 대북정책 기본 방향은 “과학기술 강군으로 만드는 굳건한 안보의 바탕 위에서, 원칙에 입각한 남북관계로 한반도 비핵ㆍ평화 실현과 통일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통해 한반도에 지속가능한 평화’를 실현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북한 비핵화 및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해서는 원칙과 일관성에 기초한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언급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한·미 간 긴밀한 조율 하에 예측 가능한 비핵화 로드맵을 제시하고 상호주의 원칙에 따른 대북 비핵화 협상을 추진하겠다는 구상이다. 북한 비핵화의 실질적 진전 시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도 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남북관계 정상화도 중요한 목표로 설정되어 있다. 대화를 통해 긴장을 완화하고 상호주의와 실사구시적으로 공동 이익 실현 분야별 남북 경제협력 로드맵을 제시하여 북한 비핵화를 견인하겠다는 구상이다. 남북 간 상호 개방과 소통‧교류를 활성화하여, 북한의 점진적 변화를 유도하며, 통일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강화하고 미래 통일국가의 청사진을 마련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언론‧출판 교류, 미디어 콘텐츠 분야 교류 등 다방면의 남북 상호 소통·교류 추진 및 인적교류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사실상 ‘투트랙 대북정책’으로 해석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5월 23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을 달랠 수 있는 시대는 이제 끝났다”면서도 “우리와 대화를 시작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라고 외교적 해결의 가능성은 열어뒀다. 윤석열 대통령은 북핵 대응과 관련해서는 “(남북 간 대화의) 공은 이제 김정은 위원장의 코트로 넘어갔다”고 말했다. “우리는 북한을 망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공동 번영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라는 말도 했다. 이런 측면에서 (북한이) 핵무장을 강화한다고 해서 평화와 번영에 도움이 된다고 보지 않는다”며 “아울러 북한이 현재와 같은 상태를 장기적으로 지속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및 핵실험 우려가 고조되는 상황에는 “일시적으로 도발과 대결을 피하는 정책을 펴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 또 문재인 정부의 ‘대북 굴종’ 정책을 겨냥한 듯 “북한의 눈치를 보며 지나치게 유화적인 정책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는 것이 증명됐다”고 강조했다.
또 지난 5월 21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미연합훈련을 강화하기로 한 데 대해서는 “군이라고 하는 것은 늘 일정한 전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훈련을 해야 하고, 한미 동맹군도 한반도의 군사적 안보적 위협에 대처하는 데 필요한 정도의 적절한 훈련이 필요하다”며 “그건 원칙”이라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다만 확장 억제와 관련, 대한민국 영토 내 미국의 전술핵 배치 가능성에는 “논의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런 발언들은 이전 문재인 정부와 확연히 다른 대북정책의 방향성, 즉 힘에 의한 평화와 대북 강경 기조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대적투쟁 원칙 제시와 남북관계 전망
반면,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가 5월 10일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 직후 내보낸 기사는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에 대한 불편한 속내를 잘 보여준다. 조선신보는 윤석열 정부를 향해 대미종속과 반북대결 노선의 강행을 표방하고 있다며 “동북아시아의 화약고인 한반도 정세 불안을 극도로 고조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인식과 기조는 지금도 유지되고 있고, 오히려 더 강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지난 6월 8일부터 10일까지 진행된 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이뤄진 토론과 결론 내용은 향후 남북관계의 전망에 대한 중요한 단초를 제공해주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전원회의에서 ‘대적투쟁’이라는 함축적인 표현을 사용해 남북관계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사실 여기서 언급한 ‘적’은 자신들을 향해 적대시 정책을 취하고 있는 모든 상대방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은 ‘대적투쟁’의 대상을 직접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그간 북한이 이 표현을 써왔던 관례에 비춰보면 남한을 겨냥한 것으로 봐야할 것이다.
북한이 남측을 염두에 두고 ‘대적투쟁’을 거론한 건 지난 2020년 6월 이후 정확히 2년 만이다. 당시 김여정 당 부부장은 남측 일부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에 반발해 “대남사업을 철저히 대적사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은 뒤 남북 통신연락선을 차단하고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며 한반도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다. 결국 ‘대적투쟁’이라는 표현이 다신 등장한 것은 향후 대남 대결국면을 예고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10월 국방발전전람회에서 “우리의 주적은 전쟁 그 자체이지 남조선이나 미국, 특정한 그 어느 국가나 세력이 아니다”라면서 사실상 대적사업이 철회되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북한은 당시 김정은 위원장의 언급 이후로 다소 완화된 대남 입장을 밝혔다. 지난해 12월 말에 개최한 4차 전원회의(2021.12.27.∼12.31.) 결론에서는 “다사다변한 국제정치정세와 주변환경에 대처하여 북남관계와 대외사업부문에서 견지하여야 할 원칙적 문제들과 일련의 전술적 방향들을 제시하였다”고 밝혔다. 당시 문재인 정부 때만해도 ‘북남관계’라는 일반적인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올해 남한의 정권 교체 이후 다시 기류에 변화가 생겼다. 김여정 당 부부장은 올해 4월 담화를 통해 “원수님이 이미 우리 주적은 전쟁 그 자체이며 남조선이 아님을 명백히 밝혔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남조선(남한)이 우리(북한)와 군사적 대결을 선택하는 상황이 온다면 부득이 우리 핵전투무력은 자기의 임무를 수행해야 할 것”이라며 남한을 향한 핵무기 사용 가능성도 언급했다. 그는 당시 “엄중히 경고한다”라며 “우리는 남조선에 대한 많은 것을 재고할 것”이라고 말하며 대남사업의 기조 변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후 북한은 윤석열 정부의 출범 이후 대북 정책 기조를 살피며 대남사업의 기조 변화를 최종적으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김여정 당 부부장은 담화 약 두 달만에 다시 남한을 ‘적’으로 삼겠다는 방침으로 기조 변화를 택한 것이다. 여기에는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북한군과 북한정권은 우리의 적”이라는 주적 개념이 다시 등장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는 5월 발표한 110대 국정과제에서 “북한 정권과 북한군이 우리의 적임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도록 국방백서에 명기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라고 밝힌 바 있다. 박정환 육군참모총장도 전날 공개발언을 통해 “우리의 적, 북한은 핵·미사일 고도화를 통해 한반도뿐만 아니라 세계평화를 위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후 군 장병을 위한 정신교육 교재에 북한군과 정권이 ‘적’으로 명시됐다. 이처럼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 내부에서 규정했던 대남 대적투쟁을 다시 꺼내든 것은 남북 간 대결국면이 불가피함을 시사한다.
윤석열 정부는 북한의 잇따른 무력시위에 한미 및 한미일 공조를 강화하면서 북한에 대한 추가 제재까지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시사하는 등 북한의 도발적 행보에 국제사회의 공조 강화를 통한 대응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북한의 대외 선전매체들은 연일 윤석열 정부를 비난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외교안보부처 장관 및 고위 당국자에 대한 거침없는 실명 비난을 가하고 있는데, 이는 이번에 확인된 대남사업의 ‘대적사업’ 전환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김정은 위원장은 이번 전원회의에서 대적사업의 구체적인 행동 계획을 언급하거나 윤석열 대통령을 향한 메시지를 내놓진 않았다. 우려됐던 핵실험과 관련해서도 어떤 결정 사항을 공표하진 않았다.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아직 남한을 향한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대적사업의 강도가 ‘최고조’에 이르렀다는 해석을 하긴 이른 측면이 있다. 그러나 북한이 올해 단행한 18차례의 무력시위 중 상당수가 남한에 대한 직접 타격, 특히 핵무기를 사용한 타격을 상정했다는 점에서, 북한이 고강도의 대남 무력시위를 추가로 단행할 가능성은 열려있는 상황이다.
남북한 인프라 협력의 가능성
앞서 설명한 것처럼 남북관계는 단기간 내 개선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윤석열 정부의 남북경협 정책은 북한의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와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윤석열 정부는 기본적으로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긴장을 완화하고, 상호주의와 실사구시적으로 공동 이익 실현을 위한 분야별 남북 경제협력 로드맵을 제시하여 북한 비핵화를 견인하겠다는 기본적 입장은 밝히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남북경협 로드맵은 국정과제로 제시된 ‘남북공동경제발전계획’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계획 속에 비핵화 과정과 유기적으로 연계된 경제협력 비전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실행과제를 제시하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인프라 △투자‧금융 △산업‧기술 등 분야별 경제발전 계획을 종합, 비핵화 진전에 따라 추진하겠다는 구상이다. 남북 ‘그린데탕트’를 구현하겠다고 밝힌 대목도 눈길을 끈다. 미세먼지·자연재난 공동대응 등 환경협력을 추진하겠다는 구상이다. 산림·농업·수자원 분야에서의 협력을 강화하고, 접경지역의 그린평화지대화를 도모하려는 계획이다.
이에 대한 북한측의 공식적 반응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대외선전매체들의 보도들에 근거하면 이런 구상이 본질적으로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 구상과 다르지 않다고 보는 듯하다. 다만 최근 눈길을 끄는 뉴스는 북한이 최근 남측 기업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공항고속철도·공항고속도로 건설 협력 가능성을 타진한 점이다. 서울평양뉴스(2022.05.31.)에 따르면 북한측에서 평양시내 1만호 주택건설을 마무리 지은 후 외국 관광객 유치와 평양시내 교통망 확충을 위해 공항철도 등 교통 인프라 구축에 나설 것이라는 뜻을 남측에 전달해왔다. 북한이 최근 순안국제공항에서 평양시내를 연결하는 공항철도와 도로 건설(24㎞)을 위한 타당성 검토에 착수했고, 북한은 타당성 검토와 설계작업이 끝나면 2년 후부터 공사에 들어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한다. 평양 순안국제공항에는 현재 일반 도로만 연결돼 있고 지하철 등은 연결돼 있지 않은 상태다. 북한은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신의주∼개성을 연결하는 고속도로 건설을 위해 중국기업과 국내업체 등을 대상으로 접촉을 벌여 왔지만,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중단된 상태다.
현재의 남북관계가 경색되어 있고, 앞날에 대한 불확실성이 크다보니 인프라 협력까지는 갈 길이 멀어 보이지만 인도적 지원을 포함한 교류협력의 틈새를 만드는 노력은 지속할 필요가 있다. 인도적 지원은 작은 신뢰를 쌓는 토대가 되고, 중장기적으로 인프라 협력은 물론 북한을 비핵화 대화와 협상의 테이블로 견인하기 위한 마중물임을 인식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 보인다.